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돌아가신 어머니꿈
- 태양태몽
- 조선 문신 태몽
- 똥꿈
- 조선문신태몽
- 용꿈태몽
- 조선 태몽
- 조선 문신 예지몽
- 조선 태조 이성계 꿈
- 물고기꿈
- 생선꿈
- 조선 임금 태몽
- 학 태몽
- 죽음 예지몽
- 죽음예지 꿈
- 조선 예지몽
- 보석꿈해몽
- 공자태몽
- 죽음 예지 꿈
- 복권당첨꿈
- 꿈해몽
- 조선왕태몽
- 뱀꿈
- 예지몽
- 토지꿈
- 별태몽
- 용태몽
- 조선 문관 예지몽
- 금시계꿈
- 조선왕비태몽
- Today
- Total
목록예지몽이야기(55)
시종일몽(始終一夢)

태종 이방원의 책사였던 하륜(河崙, 1347~1416)은 2차례의 왕자의 난을 기획하여, 태종 이방원이 왕위에 오를 수 있게 한 인물이다. 1차 왕자의 난 당시, 태조 이성계는 총애하던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 씨가 죽고(1396), 상심이 큰 상태였다. 그런데 첫째 부인의 아들인 이방원이 계모 신덕왕후 소생의 두 동생(방번, 방석)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자 태조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당연히 태종 이방원의 책사였던 하륜에 대한 노여움은 컷을 것이다. 이후 태종의 아바지이자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사망(1408)한다. 이성계는 자신이 죽으면, 먼저 세상을 떠난 신덕왕후가 묻힌 정릉에 묻히길 원했으나, 아들인 태종은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풍수에 능통했던 하륜이 지금 태조 이..

허암(虛庵) 정희량(鄭希良, 1469~?)은 연산군 때 문신이며 문장가다. 그의 나이 26세(1495)에 대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아갔으나, 3년 후인 29세(1498)에 일어난 무오사화로 귀양살이를 하게 된다. 단지, 그의 스승이 김종직이란 이유로 아무 죄 없이 평안도 의주(義州)로 귀양을 간 것이다. 무오사화는 당시 사관이자 사림파였던 김일손이 세조의 왕위찬탈의 부당함을 빗대어, 그의 스승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을 사초에 적었는데, 반대파인 훈구파가 이를 빌미 삼아 사림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한 사건이다. 평안도 의주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정희량은 그의 나이 31세(1500) 애 다시 귀양지를 경상도 김해(金海)로 옮긴다. 바로 다음 해(1501) 봄에 김해 귀양지에서 어머니 청주 경 씨가 돌아가셨다는 ..

인목왕후(仁穆王后, 1584~1632)는 조선 14대 임금인 선조의 두 번째 왕비다. 첫 번째 왕비와의 사이에 아들(적자)이 없었던 선조는 이미 광해군이 세자의 자리에 있고, 후궁소생의 장성한 아들이 많았음에도, 정비소생의 아들을 얻기 위해, 50세(1602)의 나이에 18세의 왕비를 맞이한 것이다. 선조가 재혼할 당시 아들 광해군이 27세였으니, 새어머니 인목왕후가 의붓아들인 광해군보다 9살이나 어렸다. 인목왕후는 선조의 바람대로 적자인 영창대군을 낳는다. 선조는 적자와 서자 모두 합쳐 총 14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중 영창대군은 선조의 유일한 적자였다. 이때부터 비극은 예정되었던 것 같다. 선조는 세자였던 광해군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적자인 영창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 했고, 인목왕후 또한 그..

손순효(孫舜孝, 1427-1497)는 조선 전기에 호조참판, 형조참판,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문장가다. 손순효는 성종 임금이 아끼던 신하중 하나였는데, 성종 임금과의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문장이 아주 뛰어난 손순효는 명나라에 보내는 서신을 도맡아 처리할 정도록 재주가 특출 났다. 그러나 옥에 티처럼 술을 무척 좋아해 항상 술에 취해 있었는데, 업무 중에도 술에 취해 있기도 했다고 한다. 하루는 성종 임금이 은으로 만든 술잔 하나를 주면서, '하루에 한 잔만 마셔라'는 어명을 내렸다. 얼마 뒤 또 만취한 손순효를 본 성종이 그를 다그치자, 얇게 펴서 사발크기로 키운 술잔을 내보이며 하루 한 잔만 마신 게 맞다며 둘러댔다는 이야기다. 손순효는 형제가 다섯이었는데, 그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조선 초기 문신이자 대문장가로 명망이 높았으며 특히 시에 능했다 또한 천문, 지리, 의약, 풍수 등에도 통달할 정도록 학문의 폭이 넓은 학자였다. 서거정은 세종 때부터 성종 때까지 총 6명의 임금을 모시고 45년간 벼슬을 하였는데, 그중 세조 임금은 서거정을 많이 아껴 주요 관직에 잇따라 발탁하며 신임했다. 세조가 서거정을 계속 신임했던 이유는 그의 탁월한 재주도 있었지만, 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수양대군 시절 서거정과 함께 명나라에 가는 길에 서거정이 꾼 꿈 때문이기도 하다. 세조가 즉위 전 수양대군이던 시절 고명 사은사(사신)로 명나라 연경에 가게 된다(1452). 당시 서거정은 33세로 부교리로 있었는데, 그해 겨울 출발하는 수양대군의 사신단에 사은종사관으로 ..

조선 17대 임금 효종(1619-1659)은 형인 소현세자(1612-1645)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왕세자로 책봉되어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소현세자와 효종은 병자호란(1636) 이후, 청나라에 8년간 볼모로 가 있으면서, 서로 의지하며 각별하게 지낸 형제였다. 그러나 조선으로 귀국 후, 두 사람의 운명은 바뀌게 된다. 먼저 귀국한 소현세자가 조선에 도착한 지 두 달 만에 갑자기 죽게 되고, 아버지 인조가 죽은 소현세자의 아들이 아닌 자신의 차남 봉림대군(효종)을 왕세자로 책봉했기 때문이다. 소현세자의 병명은 학질(말라리아)이었으나, 이틀에 걸쳐 2차례 침 치료를 받다가, 침을 맞기 시작한 지 3일 만에 그날 정오를 넘지 못하고 사망한다. 죽은 소현세자는 효릉((孝陵) 뒷산 언덕에 묻힌다. 효릉은 ..

1544년(중종 39)년 봄에 충청도내에 전염병이 크게 번져 돌았다. 전염병 발생당시 충청도관찰사의 보고에 의하면, 충청도내 이산현(尼山縣), 보은현(報恩縣), 청주(淸州) 3곳에서만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217명, 감염되어 앓고 있는 사람이 474명이었다. 약재도 모자라서 서울에 있는 중국 약재를 따로 더 내려보낸다. 충청도 덕산향교(德山鄕校)의 생도였던 김응신(金應臣)과 그의 어머니도 이 전염병이 처음 돌기 시작할때, 병에 걸리게 된다. 김응신은 자신도 전염병에 걸려 거동이 불편함에도, 어머니의 병을 간호하기 위해 온갖 약처방을 하며 애썼다. 아들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연로한 어머니는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게 된다. 어머니가 죽자 장례준비를 해야 했지만, 사망원인이 전염병인 탓에 집에서 빈소를 차릴..

조선 인조 19년(1641)에 경상도 함양에 살던 백성 원연(元連)은 너무 가난하여, 더 이상 마을에서 생활할 수 없게 되자, 부인과 자식들을 데리고, 옛 신라시대 절터 옆에 토굴을 파서 들어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원연이 밤에 잠을 자다 꿈을 꾸게 된다. 꿈속에서 신(神)과 같은 사람이 나타나 원연에게 "내가 마땅히 너에게 후하게 주리라." 하고 말하고 사라졌다. 원연은 이런 똑같은 꿈을 두세 번 더 꾸었는데, 무언가 이상하고 신기하다고 생각되어 아내에게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말해 준다. 그의 말을 들은 아내도 역시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하며 자신의 꿈 속에서 방안에 복되고 좋은 기운이 가득 차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밤에 토굴 방 안에서 무언가 빛나는 것이 보여서, 땅을..

주세붕(周世鵬·1495~1554)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소수서원)을 건립하여 지방인재 양성에 기여한 인물이다. 주세붕이 37세(1532)에 아버지 주문보(周文俌)를 잃고, 5년 후 그이 나이 42세(1537)에 어머니 창원(昌原) 황 씨마저 병으로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주세붕은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외직이었던 곤양군수(昆陽郡守)를 자청(自請)하여 부임한다. 아들의 돌봄을 받던 어머니 황 씨가 병환이 점점 깊어져서, 어느 날 거동은 물론 일어나 앉지도 못할 정도로 위독하게 되었다. 주세붕은 향불을 피우고 어머니의 쾌유를 하늘에 빌었다. 이날 밤 주세붕은 어머니를 보살피다가 잠시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마치 신(神)인 듯한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주세붕에게 하얀..

임백령은 조선 중종(11대 임금)부터 명종(13대 임금) 때까지의 문신이다. 초기에는 개혁 성향의 정치인이었으나, 명종(明宗) 임금이 즉위 1545년) 후, 명종의 외숙인 소윤 윤원형(尹元衡)을 도와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인종의 외숙 대윤 윤임(尹任) 일파를 숙청하는 을사사화(乙士死禍)를 주도했다. 임백령은 이 공적으로 1등 공신으로 책록 되고 숭선부원군에 오르는 등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된다. 이런 임백령도 젊은 시절 벼슬을 하기 위해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조선의 과거시험(문과)은 크게 초시, 복시, 전시 3단계 과정을 거쳤는데, 초시와 복시 사이에 유교경전인 칠서강(七書講)을 암송하는 구술시험을 보았다. 칠서강(七書講)이란 '주역, 서전, 시전의 삼경과 논어, 맹자, 중용, 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