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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일몽(始終一夢)

태종 이방원의 책사였던 하륜(河崙, 1347~1416)은 2차례의 왕자의 난을 기획하여, 태종 이방원이 왕위에 오를 수 있게 한 인물이다. 1차 왕자의 난 당시, 태조 이성계는 총애하던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 씨가 죽고(1396), 상심이 큰 상태였다. 그런데 첫째 부인의 아들인 이방원이 계모 신덕왕후 소생의 두 동생(방번, 방석)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자 태조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당연히 태종 이방원의 책사였던 하륜에 대한 노여움은 컷을 것이다. 이후 태종의 아바지이자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사망(1408)한다. 이성계는 자신이 죽으면, 먼저 세상을 떠난 신덕왕후가 묻힌 정릉에 묻히길 원했으나, 아들인 태종은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풍수에 능통했던 하륜이 지금 태조 이..

조선 3번째 임금 태종 이방원은 2차례의 왕자의 난을 통해 배다른 형제를 죽이거나, 친형제를 유배 보내기도 하며 정권을 장악하고 임금에 오른 인물이다. 이로 인해 그의 아버지 태조에게 많은 미움을 받았으며, 왕위찬탈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했다. 이런 오점을 안고 왕위에 오른 태종은 당시 10살인 맏아들 양녕대군을 세자로 책봉(1404)한다. 그리고 세자 전문교육기관인 경승부(敬承府)도 설치하고 특급 교육을 시작하며, 세자에 대한 큰 기대를 갖는다. 적장자인 양녕대군이 자신의 뒤를 이어 성군이 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오점을 지울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양녕대군은 공부에는 뜻이 없고, 일탈과 비행을 밥먹듯이 하며, 아버지 태종의 속을 썩이다가 결국 폐세자가 된다. 후대 선조실록의 기록( ..

허암(虛庵) 정희량(鄭希良, 1469~?)은 연산군 때 문신이며 문장가다. 그의 나이 26세(1495)에 대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아갔으나, 3년 후인 29세(1498)에 일어난 무오사화로 귀양살이를 하게 된다. 단지, 그의 스승이 김종직이란 이유로 아무 죄 없이 평안도 의주(義州)로 귀양을 간 것이다. 무오사화는 당시 사관이자 사림파였던 김일손이 세조의 왕위찬탈의 부당함을 빗대어, 그의 스승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을 사초에 적었는데, 반대파인 훈구파가 이를 빌미 삼아 사림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한 사건이다. 평안도 의주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정희량은 그의 나이 31세(1500) 애 다시 귀양지를 경상도 김해(金海)로 옮긴다. 바로 다음 해(1501) 봄에 김해 귀양지에서 어머니 청주 경 씨가 돌아가셨다는 ..

인목왕후(仁穆王后, 1584~1632)는 조선 14대 임금인 선조의 두 번째 왕비다. 첫 번째 왕비와의 사이에 아들(적자)이 없었던 선조는 이미 광해군이 세자의 자리에 있고, 후궁소생의 장성한 아들이 많았음에도, 정비소생의 아들을 얻기 위해, 50세(1602)의 나이에 18세의 왕비를 맞이한 것이다. 선조가 재혼할 당시 아들 광해군이 27세였으니, 새어머니 인목왕후가 의붓아들인 광해군보다 9살이나 어렸다. 인목왕후는 선조의 바람대로 적자인 영창대군을 낳는다. 선조는 적자와 서자 모두 합쳐 총 14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중 영창대군은 선조의 유일한 적자였다. 이때부터 비극은 예정되었던 것 같다. 선조는 세자였던 광해군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적자인 영창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 했고, 인목왕후 또한 그..

한글을 비롯하여 과학, 예술, 문화,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 업적이 참으로 크다 보니 우리는 세종임금 대신 '세종대왕'이라고 부른다. 제목 그대로 세종대왕도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예지몽을 꾸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세종대왕도 예지몽을 꾼다고 직접 말씀하셨다. 예지몽이란 미래에 일어날 일이 꿈을 통해 미리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을 해몽하여 길흉을 짐작해 보고, 화복을 점치기도 하는데, 이를 점몽(占夢)이라고 한다. 이 점몽이 딱 들어맞을 때면 예지몽의 신묘함에 크게 놀라게 된다. 세종께서도 이런 예지몽의 경험을 하셨던 것 같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79권_세종 19년 10월 18일 기록에 의하면 세종이 40세 때 신하들과 경연(經筵)에 참석할 때 일이..

사육신(死六臣) 박팽년의 사위인 이공린(李公麟, 1437~1509)은 부인 순천 박 씨와의 사이에서 8형제를 두었다. 세조 임금 때 박팽년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역모로 죽임을 당하자, 그의 사위였던 이공린도 반역죄에 연좌되어 파직되고, 벼슬길에 나갈 수가 없었다. 또한 이공린의 8명의 아들도 학식과 문장이 뛰어났음에도 외할아버지(박팽년)때문에 벼슬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가 성종 이후 연좌가 해제되어 벼슬에 나가기 시작한다. 8형제의 태몽은 아버지 이공린 꾸었다고 한다. 아버지 이공린이 혼인을 하고, 처갓집에서 머문 첫날밤 이상한 꿈을 꾸게 된다. 꿈속에 늙은 첨지(僉知, 나이 든 남자) 8명이 나타났다. 첨지 8명은 아버지 이공린에게 나란히 절을 하고는 “우리들은 장차 솥에 삶아 죽게 되었습니다. 만..

손순효(孫舜孝, 1427-1497)는 조선 전기에 호조참판, 형조참판,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문장가다. 손순효는 성종 임금이 아끼던 신하중 하나였는데, 성종 임금과의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문장이 아주 뛰어난 손순효는 명나라에 보내는 서신을 도맡아 처리할 정도록 재주가 특출 났다. 그러나 옥에 티처럼 술을 무척 좋아해 항상 술에 취해 있었는데, 업무 중에도 술에 취해 있기도 했다고 한다. 하루는 성종 임금이 은으로 만든 술잔 하나를 주면서, '하루에 한 잔만 마셔라'는 어명을 내렸다. 얼마 뒤 또 만취한 손순효를 본 성종이 그를 다그치자, 얇게 펴서 사발크기로 키운 술잔을 내보이며 하루 한 잔만 마신 게 맞다며 둘러댔다는 이야기다. 손순효는 형제가 다섯이었는데, 그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조선 초기 문신이자 대문장가로 명망이 높았으며 특히 시에 능했다 또한 천문, 지리, 의약, 풍수 등에도 통달할 정도록 학문의 폭이 넓은 학자였다. 서거정은 세종 때부터 성종 때까지 총 6명의 임금을 모시고 45년간 벼슬을 하였는데, 그중 세조 임금은 서거정을 많이 아껴 주요 관직에 잇따라 발탁하며 신임했다. 세조가 서거정을 계속 신임했던 이유는 그의 탁월한 재주도 있었지만, 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수양대군 시절 서거정과 함께 명나라에 가는 길에 서거정이 꾼 꿈 때문이기도 하다. 세조가 즉위 전 수양대군이던 시절 고명 사은사(사신)로 명나라 연경에 가게 된다(1452). 당시 서거정은 33세로 부교리로 있었는데, 그해 겨울 출발하는 수양대군의 사신단에 사은종사관으로 ..

조선 제20대 임금 경종(1688-1724)은 숙종(조선 19대 임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경종의 어머니는 숙종이 총애했으나, 후일 인현왕후를 저주한 죄로 죽임을 당한 희빈 장 씨이다. 경종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쟁의 원인이 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유배된다. 경종의 태몽은 아버지 숙종임금이 꾸었다. 경종이 잉태되고 5개월쯤 되었을 무렵(1688 음력 5월), 아버지 숙종이 꿈을 꾸게 된다. 꿈속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서 ‘내가 언제 아들을 낳겠느냐.’하고 물으니 ‘벌써 임신을 하였습니다.’라고 답한다. 숙종은 자신이 총애하는 장 씨를 생각하며 ‘비록 임신을 하기는 하였으나 사내인 줄 어떻게 알겠는가.’하고 다시 넌지시 물어본다. 그러자 그 사람이 ‘아들 맞습니다.’..

조선 17대 임금 효종(1619-1659)은 형인 소현세자(1612-1645)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왕세자로 책봉되어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소현세자와 효종은 병자호란(1636) 이후, 청나라에 8년간 볼모로 가 있으면서, 서로 의지하며 각별하게 지낸 형제였다. 그러나 조선으로 귀국 후, 두 사람의 운명은 바뀌게 된다. 먼저 귀국한 소현세자가 조선에 도착한 지 두 달 만에 갑자기 죽게 되고, 아버지 인조가 죽은 소현세자의 아들이 아닌 자신의 차남 봉림대군(효종)을 왕세자로 책봉했기 때문이다. 소현세자의 병명은 학질(말라리아)이었으나, 이틀에 걸쳐 2차례 침 치료를 받다가, 침을 맞기 시작한 지 3일 만에 그날 정오를 넘지 못하고 사망한다. 죽은 소현세자는 효릉((孝陵) 뒷산 언덕에 묻힌다. 효릉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