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몽(始終一夢)

이성계와 세개의 서까래꿈 본문

예지몽이야기

이성계와 세개의 서까래꿈

Hari k 2017. 7. 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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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조선개국에 큰 영향을 주었던 무학스님의 만남은 꿈때문에 이루어졌다.  이성계가 청년시절 자신의 꿈해몽을 무학에게 부탁하여 그 꿈의 해몽을 해주게 되면서 무학스님이 1405년 입적할때까지 두사람의 인연은 계속된다. 또한 이성계도 3년후인 1408년 임종하니, 두사람의 인연은 꿈해몽이후 죽을때까지 평생 계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태조 이성계(조선) 예지몽_시종일몽(始終一夢)

무학이 강원도 안변 설봉산 토굴에서 기거할때, 그 근방 사람들은 무학이 예언을 잘하고 영험하다고 하며, 무학이 사는 토굴로 많이 몰려 들었다. 당시 이성계는 명산대찰을 돌며 무술연마에 힘쓰고 있었는데, 마침 무학이 기거하는 안변 근처에 있다가 무학의 소문을 듣고 자신이 꾸었던 이상한 꿈을 묻기 위해 무학의 토굴로 찾아가게 되었다.

 

이성계는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자신은 허물어져 가는 집 안에 있었는데, 갑자기 불이나서 서까래 3개를 등에 짊어지고 집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집앞에는 있던 꽃잎이 모두 떨어지고 어디선가 거울이 깨지는 것을 보았다.
이성계는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이것이 무슨 징조인지 해몽을 부탁했다.

 

이에 무학은 “서까래 세 개를 등에 짊어진 것은 한자로 치면 임금 왕(王)을 뜻하는 것이고, 꽃잎이 모두 떨어지면 곧 열매를 맺는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또한 거울이 깨어지면 반드시 큰 소리가 나는 법이니 이는 널리 그 이름을 떨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장군께서는 반드시 임금이 되실 것입니다. 만약 저의 해몽이 맞아서 후에 임금이 되시면 바로 이곳에 절을 하나 지어 주십시오” 라고 말했다.

 

후일에 무학의 말대로 왕이 된 이성계는 무학을 왕사로 삼고, 무학의 토굴이 있던 곳에 석왕사(釋王寺)라는 절을 지어주었다.
석왕사는 고려말 창건되어 조선초기 큰절로 증축됐으나 6.25전쟁으로 대웅전을 포함해 대다수 건물이 불타 소실된 것으로 알려있다.  정전이후 북한영토가 되어 현재 직접 확인할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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