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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태몽이야기(67)
시종일몽(始終一夢)
이징옥(李澄玉, 1399년~1453)은 조선 초기 무신으로 조선 세종 때 김종서 장군과 함께 북방 6진 개척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또한 '이징옥의 난'의 당사자 이기도 하다. '이징옥의 난'은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기 위하여 일으킨 계유정난에 맞서 군사를 일으켜 반기를 든 사건으로, 군사를 준비하던 중 부하들의 배신으로 암살되는데, 그의 나이 55세였다. 이징옥은 아버지 이전생(李全生)과 어머니 밀양(密陽) 박 씨(朴氏) 사이에서 3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경남 양산에서 태어났다. 3형제가 모두 무신으로 유명했는데, 형 이징석(李澄石, 1395~1461)은 남해안 왜구 방어의 책임자로, 이징옥 본인은 북방 오랑캐 방어의 책임자로, 동생 이징규(李澄珪, 1403년~1468)는 조선 국방의..
나옹선사(懶翁禪師, 1320∼1376)로 더 잘 알려진 혜근스님은 고려말 유명한 스님으로 고려 공민왕과 우왕의 왕사(王師)였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인 무학대사의 스승이었기 때문에, 후대에 고려불교와 조선불교의 가교역할을 했다거나 조선불교의 초석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법명은 혜근(慧勤)이지만, 법호인 나옹(懶翁)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나옹은 경북 영덕에서 아버지 아서구(牙瑞具)와 어머니 정(鄭)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20세에 문경 묘적암(妙寂庵)의 요연(了然)스님의 문하에서 승려가 되었다. 나용은 당시 중국과 인도 등에서 유명 스님들의 가르침을 받고 귀국한 유학파 스님이였으며, 국사를 돌보는 왕사의 지위에 까지 올라간 까닭에, 탄생과 성장과정 등에 대한 신비한 설화와 기록 등이 전해지고 있다...
하경복(河敬復, 1377-1438) 장군은 조선건국 후 북방국경수비, 군사정비, 병서(군사교육교재) 편찬 등에 힘쓴 손꼽히는 무신이다.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무관(고려 병조판서)이였던 아버지 하승해(河承海)와 어머니 선(宣)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하경복은 조선 태종때 영의정을 역임한 하륜의 7촌 조카이기도 하다. 하경복의 태몽은 어머니 선 씨가 꾸었다. 꿈속에 자라가 어머니 선씨의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태기가 있어 그를 낳았다고 한다. 자라태몽을 꾸어서인지, 아명(어릴 때 부르는 이름)을 왕팔(王八)이라고 불렀는데, 왕팔(王八, wángba)은 중국어로 자라나 민물거북을 낮게 부르는 비속어이다. 귀한 아들의 아명을 왕팔로 부른 것은 어릴 때 이름을 천하게 지어 귀신이 해코지를 피해 건강하고..
김득신(1604-1684)은 조선 중기의 시인이자 문인이다. 경상도 감찰사를 역임한 아버지 김치(金緻)와 어머니 사천 목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대첩으로 유명한 김시민(金時敏) 장군이 본래 작은할아버지인데, 임진왜란 때 후손 없이 전사하게 되어 조카인 김치가 김시민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어 족보상으로 김시민 장군이 김득신의 친할아버지가 되었다. 김득신의 태몽은 아버지 김치가 꾸었다. 김득신의 아버지가 집에서 책을 보고 있을 때, 갑자기 노자(老子, 중국의 유명한 사상가)가 자신의 집에 찿아왔다. 아버지는 노자를 반갑게 맞이하고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꿈에서 깨었다. 이후 어머니 목씨가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게 되자 아버지 김치는 자신의 아들이 꿈에서 본 노자처럼 큰 학자로 장성할 것..
순종(1874-1926)은 조선 제27대 왕으로 아버지 고종(조선 제26대 왕)과 어머니 명성황후 민씨 사이에서 4남 1녀 중 셋째로 창덕궁 관물헌에서 태어났다. 동복형제들은 모두 어려서 요절하였으므로, 명성황후 민씨의 자식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로, 태어난 다음 해 2살 때 세자로 책봉되었다. 아버지 고종이 헤이그 밀사 사건을 빌미로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되면서, 34세(1907)에 왕위에 올랐다. 순종이 즉위하기 전, 이미 을사늑약(1905년)으로 우리나라의 외교권이 박탈된 상태였으므로, 정치적인 힘이 없는 이름뿐인 왕이었다. 또한 4년 뒤 한일합방(1910)으로 우리나라의 국권을 상실하게 되었으므로 재위 기간은 약 3년(1907년부터 1910년)으로 조선의 마지막 왕이다. 순종의 태몽과 관련된 ..
인종(1515-1545)은 조선 제12대 왕으로 6살에 세자로 책봉되어 25년간 세자의 자리에 있다가, 1544년 아버지 중종의 사망으로 즉위한다 그러나, 즉위 다음 해인 1545년 8월에 3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재위 기간이 8개월 4일(1544.12.4.-1545.8.7.)로 조선 역사상 재위 기간이 가장 짧은 왕으로 알려져 있다. 인종은 아버지 중종과 어머니 장경왕후 윤씨 사이에서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으나, 인종을 낳고 6일 만에 어머니 장경왕후가 산후병으로 사망하였으므로, 생모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인종의 태몽과 관련된 내용은 '중종실록 21권, 장경왕후 지문(誌文, 죽은 사람의 행적 등을 적은 글)'에 기록되어 있다. 장경왕후는 21세(1511년)에 딸 효혜공주를 낳았고, 25세..
김경손(金慶孫, ? ~ 1251)은 고려를 침략한 몽골군에 맞서 용맹하게 싸운 고려의 장군이다. 평장사(지금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고위직) 김태서(金台瑞)의 아들이다. 역시 장군이었던 김약손은 그의 형이다. 어머니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어릴적 이름은 운래(雲來)이다. '제103권 김경손 열전'에 의하면 그의 태몽은 그의 어머니가 꾸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잉태하기 전 꿈을 꾸었는데, 오색구름 사이로 푸른 옷을 입은 남자아이(청의동자(靑衣童子)) 하나를 보았다. 구름 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 아이를 귀하게 여기듯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들은 공중으로부터 조심스럽게 아이를 아래로 내려보냈다. 이내 푸른옷을 입은 남자아이가 김경손의 어머니 품속으로 들어왔고, 어머니는 아이..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인이다. 또한 수양대군(훗날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기를 들어 벼슬을 거부하고 절개를 지킨 생육신 중 한 사람이다. 김시습은 충순위(조선 중앙군)에서 무관으로 근무하던 아버지 김일성과 어머니 울진 장씨 사이의 아들로 한양의 성균관 근처 사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강릉이며 자는 열경(悅卿)이다.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청한자(淸寒子)·벽산(碧山)등 여러가지 호를 사용하였다. 설화에 의하면 김시습이 태어나는 날 집 근처의 성균관 유생들 중 대부분이 공자가 성균관 근처 김일성의 집에서 아이로 태어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기이한 꿈을 이상하게 여긴 유생들이 다음날 그 집에 찾아가 물어보니 김시습이 태어났다고 하여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가..
김일손(金馹孫, 1464~1498))은 조선 전기 문신이자 학자이다. 연산군 때 무오사화의 발단이 되어 무고하게 희생된 인물이기도 하다. 김일손은 집의(사헌부 종3품 관직)를 지낸 아버지 김맹(金孟)과 어머니 용인 이씨사이에서 3남 2녀 중 셋째 아들로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계운(季雲)이다. 호는 탁영(濯纓)인데,‘갓끈을 씻는 사람’이란 의미로 초나라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중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김일손의 아버지 김맹은 어느 날 신묘한 꿈을 꾸게 된다. 하늘을 날아 땅으로 내려오는 말 3마리를 보게 되는데, 그 모습이 탐스럽고 훌륭한 것으로 보아 신령하다고 여기는 용마(龍馬)..
미수 허목(許穆, 1595-1682)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대학자이다. 또한 정치적으로 송시열과 예학을 놓고 논쟁했던 남인의 핵심인물이다. 그는 그림, 글씨, 문장 등이 모두 뛰어났다. 특히 고대 서체인 '전서'를 연구하여 자신만의 고유한 서체인 미전(眉篆=미수 허목의 전서)을 완성할 정도로 최고의 서예가이기도 하다. 허목은 당시 현감을 지낸 아버지 허교(許喬, 1567-1632)와 어머니 나주 임씨사이에서 3남 1녀 중 맏아들로 한성부 창선방(지금의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양천(陽川), 호는 미수(眉叟)이다. 허목의 호 미수(眉叟)는 '눈썹이 긴 노인'이란 뜻으로 그의 눈썹이 눈을 덮을 정도로 길어 스스로 '미수'라고 지은 것이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당대 최고 문장가이자 풍류가인 임제(林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