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몽(始終一夢)

세종대왕이 인정한 조선의 신동 김시습의 태몽 본문

태몽이야기

세종대왕이 인정한 조선의 신동 김시습의 태몽

Hari k 2018. 3. 2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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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인이다. 또한 수양대군(훗날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기를 들어 벼슬을 거부하고 절개를 지킨 생육신 중 한 사람이다. 

매월당 김시습(조선) 태몽_시종일몽(始終一夢)

 

김시습은 충순위(조선 중앙군)에서 무관으로 근무하던 아버지 김일성과 어머니 울진 장씨 사이의 아들로 한양의 성균관 근처 사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강릉이며  자는 열경(悅卿)이다.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청한자(淸寒子)·벽산(碧山)등 여러가지 호를 사용하였다.

 

설화에 의하면 

김시습이 태어나는 날 집 근처의 성균관 유생들 중 대부분이

공자가 성균관 근처 김일성의 집에서 아이로 태어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기이한 꿈을 이상하게 여긴 유생들이 다음날 그 집에 찾아가 물어보니 김시습이 태어났다고 하여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또 다른 설화에 의하면 김시습의 어머니 장씨가가 꿈을 꾸었는데

꿈에 공자가 집으로 찾아 온 것을 반갑게 맞이하였다고도 한다.

 

태몽때문이였는지 그의 이름 시습(時習)은 공자가 쓴 논어(論語)의 첫 구절인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에서 따왔다고 전해지는데, 이웃에 살던 먼 친척벌 되는 최치운이 지어 주었다고 한다.

 

그는 나면서부터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태어난지 8개월 만에 배우지 않고도 글자를 알았고, 말은 더디게 하였지만 글을 보면 읽지는 못하여도 뜻은 알았다.

3세 때는 글을 지을 수 있었으며 5세 때 유교 경전을 이해해서 이미 신동으로 그 명성이 온 나라에 자자했다.

이 명성을 들은 세종이 친히 그를 불러 재주를 시험하고 선물을 주며, 훗날 나라의 큰 재목으로 쓰일 것이라 약속하기도 했다.

 

그의 나이 21세에 절에 들어가 과거시험을 준비할때, 수양대군(훗날 세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자 정치에 뜻을 버리고, 훗날 임금이 된 세조가 그에게 벼슬을 권하였어도 이에 응하지 않았다.

또한 스스로 머리를 깎아 승려가 되어 설잠(雪岑)이라는 법명으로 일생의 대부분을 전국을 유랑하면서 보내게 된다.

 

이긍익이 쓴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사육신이 죽임을 당하였을 때,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노량진에 묻어 준 사람이 김시습이었다고 한다.

 

31세에 경주 금오산에 들어가 토굴을 짓고 칩거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완성했으며, 금오신화 이외에도 15권의 시집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우주만물의 본질과 현상에 대한 체계적 설명을 시도한 최초의 철학자로 ‘氣철학’을 연구하기도 했다. 

 

말년의 그는 춘천 청평사와 외가가 있는 강릉, 설악산 오세암 등을 배회하다가 59세(493년)애 충청도 홍성 무량사에서 사망한다.

 

후대에서는 김시습을 뛰어난 재능을 지닌 불세출의 천재였지만 시대를 잘못만나 평생을 아웃사이더로 보낸 강직한 지식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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