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몽(始終一夢)

조선 문장가 김득신의 태몽 본문

태몽이야기

조선 문장가 김득신의 태몽

Hari k 2022. 9. 1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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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신(1604-1684)은 조선 중기의 시인이자 문인이다.
경상도 감찰사를 역임한 아버지 김치(金緻)와 어머니 사천 목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대첩으로 유명한 김시민(金時敏) 장군이 본래 작은할아버지인데, 임진왜란 때 후손 없이 전사하게 되어 조카인 김치가 김시민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어 족보상으로 김시민 장군이 김득신의 친할아버지가  되었다.

조선_김득신 태몽_시종일몽(始終一夢)



김득신의 태몽은 아버지 김치가 꾸었다.

김득신의 아버지가 집에서 책을 보고 있을 때,
갑자기 노자(老子, 중국의 유명한 사상가)가 자신의 집에 찿아왔다.

아버지는 노자를 반갑게 맞이하고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꿈에서 깨었다.

이후 어머니 목씨가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게 되자
아버지 김치는 자신의 아들이 꿈에서 본 노자처럼  큰 학자로 장성할 것이라 생각했다.  

노자의 자(字, 관례전까지 사용하던 이름)가 담(聃)이였는데, 그 '담(聃)'자를 따서
'꿈속에서 노자를 보았다'라는 의미로, 태어난 아이의 아명을 몽담(夢聃)이라고 지었다.

그러나 주변의 기대와는 달리

김득신은 어려서 천연두를 심하게 앓은 탓에 열 살에 겨우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스무 살에 처음 시를 지을 정도로  배움이 늦었다.

김득신의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질책하지 않고 격려하며, 학문에 힘쓰기를 권하며 믿어주었는데
김득신이 22살(1625년) 때 아버지 김치가 학질로 죽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끊임없는 반복 독서를 하며 더욱 학업에 매진하게 되며,
글을 1만번이상 읽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가 남긴 '독수기'(讀數記, 글을 읽은 횟수를 스스로 적은 기록)를 보면, "'백이전'이란 글은 1억 1만 3천 번을 읽었고, '노자 전'은 2만 번을 독파했다. 또 '장군 묘갈명'은 1만 3천 번을 읽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59세 다소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조선시대 명문장가의 반열에 오른다.
이후 벼슬에 큰 뜻이 없던 김득신은 61세이후 낙향하여 80세(1684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책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묘비에는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었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뿐이다'라는 그가 직접 쓴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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