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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일몽(始終一夢)
이중열(李中悅, 1518-1547)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을사사화에 억울하게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그가 죽은 후 선조 때 복위되었다) 을사사화(乙巳士禍)는 중종(조선 11대 왕)이 죽고 왕위에 오른 인종(조선 12대 왕, 장경왕후의 아들)이 9개월 만에 죽자, 이복동생 명종(조선 13대 왕, 문정왕후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면서, 명종의 외척인 윤원형(소윤(小尹))이 인종의 외척인 윤임(대윤(大尹))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많은 선비들이 유배되고 죽임을 당한 사건이다. 이중열의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습지(習之)이며, 호는 과재(果齋)이다. 병조판서였던 아버지 이윤경(李潤慶)과 어머니 신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나이 25세(1543)에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왕세자교육관청)에..
오윤겸(吳允謙, 1559~1636)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청백리(인조 때 청백리에 녹선)중 한 분이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여익(汝益), 호는 추탄(秋灘), 또는 토당(土塘)이다. 아버지 오희문(吳希文, 1529~1613)과 어머니 연안 이 씨 사이에서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오윤겸의 태몽은 2개로, 하나는 외할아버지가 또 하나는 어머니 연안 이 씨가 꾸었다고 한다. 어머니 이 씨가 오윤겸을 잉태할 즈음, 외할아버지 이정수는 함경남도 문천(文川)군을 다스리는 수령(군수)이었다. 어느 날 외할아버지 이정수의 꿈에 하늘에서 빛나던 삼태성(三台星)이 자신이 있는 관사 남쪽방향으로 구르듯 떨어지는 것이 보았다. 떨어진 삼태성은 외할아버지 이정수의 품으로 들어왔고, 얼결에 별을 품에 안은 채 꿈..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서예가로서 900여수의 시조를 남긴 인물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로 시작하는 시조도 남구만의 작품이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해놈은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하나니 숙종조 당시 영의정이었던 남구만은 59세(1688)에 숙종의 후궁 장희빈을 비판한 죄로 함경도 경흥으로 유배를 갔다가, 6개월 후 유배가 풀렸다. 남구만은 60세(1689)되던 해 음력 4월 18일에, 다시 다른 빌미를 잡혀 강원도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장희빈이 아들(후일 경종_조선 20대 왕)을 낳아 권력을 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구만이 강원도 유배시절에 일어났던 일이다. 남구만이 유배 가는 도중..
기건(奇虔, 1390~1460)은 조선 문관으로 청백리 중 한 명이다. 청백리(淸白吏)는 조선시대 청렴한 관직자에게 주어진 명칭으로, 그 인물이 사망한 후 엄격한 평가과정을 거쳐 의정부(조선 최고 행정기관)에서 수여했다. 일종의 관리 표창제도다. (기건도 그가 사망한 이후 세조 때 청백리로 지정되었다) 세종임금이 기건을 제주목사로 임명할 당시(1443), 제주는 한양과 멀리 떨어진 곳이라 낙후되고, 왜구(일본해적)의 노략질도 심해서 모두가 기피하는 곳이었다. 따라서 관리 중에 과오가 있거나 문무를 겸비한 인물을 임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문관 출신의 평판이 좋은 기건이 제주목사로 임명되자 주변 신하들의 반대도 있었다고 한다. 기건은 약 3년간(1443~1445) 제주목사로 있었는데, 그가 제주목사로 ..
조선 11대 왕 중종은 폭정을 일삼던 연산군을 몰아내고(1506, 중종반정) 자신을 왕으로 추대한 반정공신들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따라서 반정공신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반정공신 중 대다수는 기득권세력인 훈구파였는데, 그들은 왕권(중종)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권세를 키우며 더욱 강해졌다. 중종은 이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조광조 등의 사림파를 등용하여 왕권을 강화하려 하였다. 그러나 조광조의 급진적인 개혁정치로 인해 부담을 느낀 중종은 조광조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사림파에게 위기감을 느낀 훈구파의 계략으로 조광조 등의 사림파 관료들이 숙청되는데, 이것이 기묘사화(1519)의 개요다. 당시 관직에 있던 사림파 김안국(金安國, 1478~1543)과 김정국(金正國, 1485~1541) 형제도 조광조와..
신천익(愼天翊, 1592~1661)과 신해익(愼海翊, 1592~1616)은 쌍둥이 형제로 전남 영암에서 아버지 신인(愼諲)과 어머니 덕수(德水) 이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제가 어릴 때 아버지가 죽었기 때문에, 장성할 때까지 어머니 이 씨가 아들들을 홀로 키웠다. 형제는 잘 자라서 형 천익은 20세(1612)에, 동생 해익은 그다음 해 21세(1613)에 각각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간다. 형제의 태몽은 어머니 이 씨가 꾸었다. 어디선가 학 두 마리가 날아오더니, 어머니 이 씨의 팔뚝 위에 두 마리가 모두 앉았다. 먼저, 학 한 마리가 날개를 펴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나머지 학 한 마리도 날개를 펴고 날아서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이후 쌍둥이 형제를 낳았고, 태몽에서 본 학을 생각하며 형제의 이름을 지..
송희미(宋希美, 13??~1437)는 본래 일개 군사였으나 태종(세종의 아버지) 때 무관으로 발탁되어 세종 때 절제사(2품)의 위치까지 오른 사람이다. 그가 고위직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당대 임금이었던 세종이 출신과 상관없이 오직 능력에 따라 인재를 발탁하였기 때문이다. (송희미는 활을 아주 잘 쏘았다고 한다) 송희미는 세종 13년(1431)에 함경도 경원 절제사(慶源節制使)로 부임하여, 세종 18년(1436)에 파직될 때까지 내내 북방을 지켰다. (오랫동안 변방을 지킨 송희미가 기특하여 세종은 재위 17년(1435)에 종 2품 상계(上階) 품계인 가정대부(嘉靖大夫)로 승진시켜 준다) 송희미가 함경도 경원에서 절제사로 근무할 때, 그의 수발을 드는 수청기생이 하나 있었다 세종 18년(1436) 9월..
조선 15대 왕 광해군(1575~1641)은 부인 왕비 류 씨와의 사이에 4명의 자녀가 있었으나, 3자녀는 모두 어려서 요절하고, 후일 세자가 된 아들 이지(李祬, 1598~1623)만 남게 된다. 광해군도 이전 왕들과 마찬가지로 후궁을 많이 두어 아들을 많이 낳아 왕실이 번창하기를 원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광해군이 직접 처녀 간택을 통해 후궁 선발을 하라고 명령한 기록이 있는데, 간택령이 내려진 시기는 각각 그의 나이 35세(1610), 40세(1615)였다. 그러나 광해군은 33세(1608)에 즉위하고, 48세에 인조반정(1623)으로 폐위되고, 66세(1641)에 사망할 때까지, 후궁 첩지를 받은 9명의 후궁들 사이에서 아들은 탄생하지 않는다. 연려실기술 제23권 기록에 의하면, 광해가 아들과 관련..
도선(道詵, 827~898)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초기의 고승(禪僧)이자 풍수가로 유명한 인물로 도선국사로 많이 알려져 있다. 도선은 신라 헌강왕이 궁궐로 초빙해 법문을 들을 만큼 승려로서도 명성이 높았으나, 풍수지리의 대가로서 더 유명했다고 한다.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난 도선은 15세 되던 해에 구례의 월유산 화엄사에서 승려가 되었다. 속성(俗姓)은 김(金)이고 자는 옥룡(玉龍)이다. 도선의 부모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며, 태종 무열왕의 서손(庶孫=서자의 아들)으로 왕족이라는 설(說)이 있다. 도선의 태몽과 관련하여 광양 옥룡사 "선각국사비문(先覺國師碑文)"의 기록에 의하면, 도선의 어머니가 빛나는 구슬을 삼키는 태몽을 꾸고 그를 잉태한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 강 씨가 꿈을 꾸었는데, 어떤 사..
윤상(尹祥, 1373~1455)은 조선초 문신이자 대학자이다. 윤상은 윤선(尹善)의 아들로 경상북도 예촌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는 것이 없다. 본관은 예천(醴泉). 초명은 윤철(尹哲). 자는 실부(實夫), 호는 별동(別洞)이다 윤상의 태몽은 아버지 윤선(尹善)이 꾸었다고 전해진다. 윤상을 잉태하기 전, 윤상의 아버지는 늙도록 아들이 없어, 아들을 기원하며 옛 무덤에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지냈다 어느 날 꿈에 무덤 주인이 나타나서는 감사의 표시로 학 한 마리를 아버지 윤선에게 주고 사라졌다. 윤선은 학을 받아 들고 꿈에서 깨었다. 이후 아이를 잉태하고, 원하던 아들을 낳았으니, 그 아들이 바로 윤상이다. 일부 후대 사람들은 윤상의 태몽에 등장한 '학'은 조선 문관의 관복 흉배에 수놓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