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몽(始終一夢)

조선 청백리 기건(奇虔) 꿈을 통해 손자 탄생을 알게 되다 본문

예지몽이야기

조선 청백리 기건(奇虔) 꿈을 통해 손자 탄생을 알게 되다

Hari k 2023. 11. 18.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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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건(奇虔, 1390~1460)은 조선 문관으로 청백리 중 한 명이다. 

 

청백리(淸白吏)는 조선시대 청렴한 관직자에게 주어진 명칭으로, 그 인물이 사망한 후 엄격한 평가과정을 거쳐 의정부(조선 최고 행정기관)에서 수여했다. 일종의 관리 표창제도다. (기건도 그가 사망한 이후 세조 때 청백리로 지정되었다)

세종임금이 기건을 제주목사로 임명할 당시(1443), 제주는 한양과 멀리 떨어진 곳이라 낙후되고, 왜구(일본해적)의 노략질도 심해서 모두가 기피하는 곳이었다. 따라서 관리 중에 과오가 있거나 문무를 겸비한 인물을 임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문관 출신의 평판이 좋은 기건이 제주목사로 임명되자 주변 신하들의 반대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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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건은 약 3년간(1443~1445) 제주목사로 있었는데, 그가 제주목사로 재직할 때 일이다.

그가 제주목사로 부임하기 전, 제주도는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지 않고 시신을 바로 언덕이나 구덩이 또는 바닷가에 버리는 것이 풍속이었다고 한다. 


제주목사 기건은 이 풍속이 잘못되었음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관을 갖추고 염습하여 장례를 치르는 장례 예법을 가르치고 실천하도록 하였다.
 
장례풍속이 정착되기 시작하던 해(1444)에 제주목사 기건이 꿈을 꾸었다. 


그가 생활하는 관사 공터에 족히 삼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 무리 중 머리가 하얀 노인들이 기건의 앞으로 나와서 말하기를, 
“제주목사의 은덕으로 해골이 땅에 드러나는 일이 없어졌으니, 너무나 고마워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제주목사께서는 올해에 어진 손자를 보실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기건이 이 꿈을 꾸던 해, 그의 아들 기축(奇軸, 1418~1464)은 26세로 결혼한지 수년이 되었으나, 아직 아들이 없었는데, 정말 이 해에 첫 손자 기찬(奇禶, 1444~1492)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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