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몽(始終一夢)

조선 쌍둥이 천재 문인 신천익, 신해익의 태몽 본문

태몽이야기

조선 쌍둥이 천재 문인 신천익, 신해익의 태몽

Hari k 2023. 11. 15.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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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익(愼天翊, 1592~1661)과 신해익(愼海翊, 1592~1616)은 쌍둥이 형제로 전남 영암에서 아버지 신인(愼諲)과  어머니 덕수(德水) 이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제가 어릴 때 아버지가 죽었기 때문에, 장성할 때까지 어머니 이 씨가 아들들을 홀로 키웠다. 형제는 잘 자라서 형 천익은 20세(1612)에, 동생 해익은 그다음 해 21세(1613)에 각각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간다.  

조선_신천익_신해익_태몽_시종일몽(始終一夢)

 

형제의 태몽은 어머니 이 씨가 꾸었다.
어디선가 학 두 마리가 날아오더니, 어머니 이 씨의 팔뚝 위에 두 마리가 모두 앉았다. 먼저, 학 한 마리가 날개를 펴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나머지 학 한 마리도 날개를 펴고 날아서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이후 쌍둥이 형제를 낳았고, 태몽에서 본 학을 생각하며 형제의 이름을 지었다, 형의 이름은 먼저 하늘로 날아 올라간 학을 생각하며 천익(天翊)이라고 짓고, 동생의 이름은 바닷속으로 날아 들어간 학을 생각하며 해익(海翊)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들 형제는 쌍둥이가 비슷한 시기에  모두 과거급제 한 것으로도  당시 아주 유명하였는데, 두 사람 모두 문장(글쓰기)과 시부(詩賦, 시 쓰기)에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 그들이 쓴 글은 당대문인들의 큰 찬사를 받았다.

또한, 천익, 해익 형제는 얼굴이 아주 똑같아서, 부모나 친척들조차도 자세히 살펴보아야 구별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삶은 태몽처럼 비슷한 듯 달랐다.

형 신천익은 20세(1612)에 급제하여 광해군 집권기에 관직에 나아갔으나, 광해조의 혼란한 정치상황에 실망해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31세에 인조반정(1623) 이후 다시 관직에 나아가, 삼사(三司)를 두루 거쳐, 67세(1659, 효종조)에 벼슬이 이조 참판(吏曹參判, 종 2품)까지 오른다. 이후 신천익은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영암으로 귀향한 뒤, 나랏일(정사)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으며, 시쓰기와 글쓰기에 전념하며 삶을 즐기다가 69세(1661)에 죽었다.

동생 신해익은 그다음 해인 21세(1613)에 알성과(謁聖科, 왕이 문묘참배 후 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과거시험 )에 장원급제하여 성균관의 관원으로 근무하다가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홀어머니를 봉양했다. 그 기간 중 몸에 병이 생겨서, 수년 동안 거처를 옮겨 다니며 살았다고 한다.  23세(1615)에  치료에 필요한 약재를 구하러 한양(서울)에 올라왔을 때, 예조좌랑(禮曹佐郞, 정 6품)겸 춘추관기사관에 임명되었으나 병이 갑자기 악화되어 24세(1616)에 요절했다. 

(동생 신해익이 한양(서울)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 전남 영암에 있던 그의 어머니가 역시 꿈을 꾸고 그에게 변고가 있음을 짐작하였다고 한다. 꿈의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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