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몽(始終一夢)

퇴계 이황의 태몽 본문

태몽이야기

퇴계 이황의 태몽

Hari k 2018. 2. 2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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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 이황(1502~1571)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조선 성리학을 정립시킨 대학자이다. 또한 우리에게 이황은 1000원권 지폐 초상화로 매우 익숙한 인물이기도 하다.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경호(景浩)이다. 그의 호 '퇴계(退溪)'는 "퇴거계상(退居溪上, 물러나 시내 위에 머무르다)"의 줄임말로 '벼슬에서 물러나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다'라는 뜻이다. 

 

퇴계 이황 태몽_시종일몽(始終一夢)

 

  퇴계는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계리에서 아버지 이식(埴)과 어머니 춘천 박씨 사이에서 5형제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본래 그의 아버지 이식은 첫째부인 의성 김씨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고, 이황을 포함한 5형제는 박씨 부인과의 사이에서 두었으므로 배다른 형제까지 합하면 7남 1녀가 된다)

 

이황의 태몽은 어머니 박씨가 꾸었다

이황을 잉태하고 나서 어머니 박씨가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공자가 자신의 70여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이황이 태어난 노송정종택의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게 된다.

(공자는 아주 많은 제자들을 두었는데, 그 제자들 가운데 학문이 뛰어나고 이름이 알려진 제자 70여 명을 칠십자(七十子) 또는 칠십이현(七十二賢)이라고도 한다)

 

또한 이황이 태어난 노송정종택은 할아버지 이계양이 계유정난(수양대군이 단종 폐위시키기 위해 일으킨 난)을 피하기 위해 한양을 떠나 안동으로 낙향하며 지은 집인데,

할아버지 이계양에게 도움을 받았던 한 스님이 '귀한 자손이 나올 터'라고 알려주어 이곳에 집을 지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훗날 퇴계의 제자 김성일이 이황 어머니의 꿈에서 공자가 들어왔던 대문을'성림문(聖臨門, 성인이 들어온 문)이라고 칭하고, 직접 글을 써서 대문에 현판으로 걸었다고 한다.

 

이황은 태어난지 7개월 만에 아버지 이식이 사망하게 되어 혼자된 어머니 박씨밑에서 성장하게 된다

23세에 성균관에 입학한 그는 28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34세에 문과에 급제해 49세까지 관직에 있었으며, 50세부터 70세에 사망할 때까지 후학을 가르쳐 제자를 양성하며 학문에 정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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