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몽(始終一夢)

죽은 남편의 경고로 목숨을 구한 인목왕후 본문

예지몽이야기

죽은 남편의 경고로 목숨을 구한 인목왕후

Hari k 2024. 3. 10.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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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목왕후(仁穆王后, 1584~1632)는 조선 14대 임금인 선조의 두 번째 왕비다.
첫 번째 왕비와의 사이에 아들(적자)이 없었던 선조는 이미 광해군이 세자의 자리에 있고, 후궁소생의 장성한 아들이 많았음에도, 정비소생의 아들을 얻기 위해, 50세(1602)의 나이에 18세의 왕비를 맞이한 것이다.

선조가 재혼할 당시 아들 광해군이 27세였으니, 새어머니 인목왕후가 의붓아들인 광해군보다 9살이나 어렸다.

인목왕후는 선조의 바람대로 적자인 영창대군을 낳는다. 
선조는 적자와 서자 모두 합쳐 총 14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중 영창대군은 선조의 유일한 적자였다. 이때부터 비극은 예정되었던 것 같다.

선조는 세자였던 광해군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적자인 영창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 했고, 인목왕후 또한 그렇게 되길 바라며, 세자인 광해군을 홀대했다.

그러나 선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세자였던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자신의 왕위를 위협하는 친형 임해군(1609), 배다른 동생 영창대군(1614), 배다른 동생 정원군의 아들 능창군(1615) 등을 역모 혐의로 차례로 숙청한다.

그 과정에서 인목왕후의 아버지인 김제남(1613)이 죽고, 인목왕후는 폐위(1618)되어 서궁(경운궁=지금의 덕수궁)에 유폐된다.

조선 인목왕후 예지몽_시종일몽(始終一夢)


인목왕후가 서궁에 갇혀 있을 때, 그녀를 죽이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속잡록(續雜錄)'에 의하면 꿈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인목왕후가 서궁에 유폐된 지 4년 되던 해(1622) 음력 12월 30일 초저녁에 잠시 잠을 자던 인목왕후가 꿈을 꾸게 된다.

꿈속에 남편 선조임금이 슬픈 얼굴로 나타나서 인목왕후에게 다가오더니
“도적의 무리가 지금 들어오고 있으니 피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인목왕후는 깜짝 놀라 꿈을 깨었지만, 두려움을 감출 수가 없어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서 시중을 들던 한 궁녀가 그 이유를 물으므로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상세히 말해 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궁녀가 “선왕의 혼령이 먼저 타이르시니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대신 대비(인목왕후)의 침전에 누워서 기다리겠습니다.” 하였다.

인목왕후가 기뻐하며 잠시 후원으로 몸을 피하고, 궁녀가 인목왕후를 대신하여, 침전에 누워있었다. 

그날 밤 광해군의 측근이었던 백대형과 이위경이 수하들을 거느리고,  '나례회'를 핑계 삼아 가면을 쓰고 서궁에 침입했는데, 저항하는 일부 궁녀들을 죽이고, 침전에서 잠을 자던 인목왕후마저 죽이고 서궁을 빠져나갔다.
(나례희( 儺禮戲)란 음력 섣달 그믐날(12월 30일) 밤에 민가와 궁중에서 묵은해의 마귀와 사신을 쫓아내려고 베풀던 의식이다)

그러나 그들이 죽인 사람은 인목왕후 대신 침전에 누워있던 궁녀였다.

인목왕후는 자신때문에 죽임을 당한 이 궁녀를 후원에 몰래 묻었다
그리고 인조반정으로 복위된 후, 다시 파내어 예를 갖추어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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