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몽(始終一夢)

꿈 때문에 이름 바꾸고 시험을 다시 본 조선 문신 강희 본문

사(史)적인 꿈 이야기

꿈 때문에 이름 바꾸고 시험을 다시 본 조선 문신 강희

Hari k 2024. 2. 20.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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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 때 문신 강희(姜曦)는 강릉판관(江陵判官), 수 지평(守持平), 이조정랑(吏曹正郞)의 벼슬을 한 사람이다.

강희(姜曦)의 본래 이름은 강여옥(姜汝玉)이었다. 

 

세종 14년(1432) 실시된 식년 생원시험 초시(한성시)에 합격한 강여옥은 자신의 답안지 외에 다른 1인의 답안지를 대신 작성하여 제출한 것이 밝혀져 사헌부의 조사를 받게 된다.

 

그가 대신 작성하여 제출한 답안지는 자신의 친척 형인 권약로(權約老)의 답안지로, 놀랍게도 권약로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강여옥은 의(疑, 의심할 의),  의(義, 옳을 의) 각각 두 편을 지어서, 하나는 자신의 이름으로, 또 하나는 권약로의 이름으로 제출했다.

조선 문신 강희 꿈_시종일몽(始終一夢)


'그는 왜 죽은 사람의 답안지를 대신 작성하여 제출한 것일까?' 사헌부 조사관들도 무척 궁금했다.
조사결과 그는 꿈 때문에 두 개의 답안지를 작성한 것이라고 실토한다.

권약로는 강여옥의 친척형으로 평소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그러나 권약로가 갑자기 죽은 후, 강여옥의 꿈에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죽은 권약로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나타나서,  "여옥아, 너는 장차 생원(生員)이 될 것이지만, 나는 이미 죽어 평생의 뜻을 이루지 못하겠구나."라고 하며 탄식했다.  

이런 똑같은 꿈을 자주 꾸게 되자 강여옥이 이상하게 여겨, 죽은 친척 형 권약로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이런 엉뚱한 행동을 한 것이다. 

결국 강여옥은 초시에 합격했음에도 복시를 보지 못하게 응시기회를 박탈당하게 되고, 결국 생원시험에 낙방하게 된다.

이 사건 이후로 강여옥(姜汝玉)은 이름을 강희(姜曦)로 개명(改名)하여 다시 생원시험에 응시해 합격(1438, 세종 20년)하고,
그다음 해 실시된 별시 문과(1439, 세종 21년)에서 15명 중 2위로 합격하여 드디어 벼슬을 얻게 된다. 꿈 사건 이후 7년 만의 일이다.

 

[연려실기술 5권]과 [용재총화 9권]에 강희의 답안지를 보고 장원급제한 윤사균(尹士昀) 이야기가 나온다.

강희는 생원시 응시기회를 박탈당해 낙방하고, 다시 심기일전하여 4년 뒤인, 세종 18년 병진년(1436) 치러진 별시(別試)에 다시 시험을 치게 된다. 

별시는 비정규 과거시험으로 이나라 백성이면 누구나 응시 가능했다.
별시의 시험방식은 당시 사회문제나 정치적 해결방도를 임금이 묻고, 과거응시자가 글로 써서 제출하는 책문(策問) 제술(製述) 방식으로, 단 한 번의 제술시험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시험이었다.

강희(姜曦)도 열심히 대책문 초고를 거이 작성하고, 해가 질 무렵이 되어 본 답안지로 옮겨 작성하려고 할 때, 갑자기 시험을 보던 근정전 앞에 회오리바람이 불어 강희의 초고가 날아가 버렸다. 초고를 잃어버린 강희는 결국 이 시험에서 낙방하게 된다.

한편 날아간 강희의 초고는 우연히 구경차 친구를 따라왔다가 과거를 보게 된 윤사균이라는 응시생 앞에 떨어지게 된다.

 

윤사균은 부귀한 가정에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과거 공부에는 소질이 없었는데, 초지(草紙, 글을 쓴 초고)를 가지고 한 마디도 쓰지 못하다가 , 마침 바람에 날려서 앞에 떨어진 강희의 대책문 초고를 집어서 베껴 써 제출하여 1등으로 합격한다.

 

윤사균(尹士昀)은 세조비(世祖妃) 정희왕후(貞熹王后)의 오빠로 훗날 수양대군의 즉위에 협력하여, 정난공신, 좌익공신 책록 되고,. 후일 벼슬이 공조 판서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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