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몽(始終一夢)

꿈 때문에 다 된 밥에 재 뿌릴뻔한 조선시대 수험생 본문

사(史)적인 꿈 이야기

꿈 때문에 다 된 밥에 재 뿌릴뻔한 조선시대 수험생

Hari k 2024. 2. 1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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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벼슬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공무원시험처럼 과거시험을 치러야 했다.
정기적인 과거시험인 '식년시'는 3년마다 열렸는데, 초시(初試), 복시(覆試), 전시(殿試) 3단계 시험과정을 거쳐 선발했다.

그중 복시는 서울과 지방에서 각각 치러진 초시합격생 240명이, 수도인 한양에 모여 재시험을 보고, 그중 33명의 최종 합격자를 정하는 아주 중요한 시험이었다.

 

복시 합격자 33명은 임금이 주재하는 전시 시험을 다시 쳐야 하지만, 전시는 합격여부가 아니라 33명의 순위를 가려 그 등수에 따른 벼슬을 주기 위한 시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시에 합격하면 사실상 과거에 합격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선 과서시험 꿈_시종일몽(始終一夢)


그런데, 조선 세종5년 계묘년(1423) 식년 문과(文科) 과거시험에서, 복시에 합격하고도 꿈 때문에 전시를 보지 않은 김시석(金視石)이라는 유생이 있었다.

생원시 출신인 김시석은 지방에서 식년 초시에 합격하고,
다음 해(1423) 음력 3월 15일에 치르는 식년 복시를 치르기 위해 한양에 올라와 숙소에 머물고 있었다.

드디어 복시 시험날, 유생 김시석도 전국에서 모인 초시 합격생 240명과 함께 복시 시험을 무사히 잘 치렀다.
그날밤 숙소에 돌아온 김시석은 잠을 자다 꿈을 꾼다.
자신이 시험에 떨어져 최종합격 33명 안에 들지 못하는 꿈이었다.

꿈을 깬 김시석은 크게 상심하여, 자신이 시험에 떨어지게 될 예지몽이라 생각하고, 주섬주섬 짐을 꾸려 바로 고향으로 내려간다.

시험 8일 후, 복시에 합격한 33명의 명단이 발표되었는데, 김시석의 이름도 합격자 명단에 있었다.
그러나, 이미 고향에 내려간 김시석은 5일 후에 시행되는 전시(임금 앞에서 보는 시험)까지 한양에 도착할 수 없었다.

 

결국 1423년 음력 5월 28일 조선 식년시 사상 처음으로 33명이 아닌 32명의 복시합격자가 세종임금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복궁 근정전에 모여 전시 시험을 치르게 된다.

다음날 32명의 최종합격자가 발표되었지만, 전시를 치루지 못한 김시석은 최종합격자 명단에 들어갈 수 없었다.

복시를 주관한 예조(禮曹)에서는 복시에 합격했지만 전시 시험을 치르지 못한 김시석(金視石)을 구제하기 위해, 3년 후 치러지는 식년시 전시 시험에 추가로 참여하도록 조치한다. 결국 3년 후인 병오년(1426, 세종 8년) 식년 전시에는, 그 해에 복시에 합격한 33명과 3년 전 복시에 합격한 김시석을 추가하여 총 34명이 전시에 참여한다.

이 시험에서 김시석은 34명중 26위의 성적을 거두어 정 9품에 해당하는 벼슬을 얻게 된다.
그리고 14년후(1440)에 태인 현감(종 6품)을 발령받아 근무하게 된다.
(태인(泰仁)은 태산현(泰山縣)과 인의현(仁義縣)의 두 고을이 합해진 뒤의 이름으로 현재 전라북도 정읍군에 속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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