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몽(始終一夢)

태조 이성계의 꿈 때문에 백지화된 계룡산 신도시 본문

사(史)적인 꿈 이야기

태조 이성계의 꿈 때문에 백지화된 계룡산 신도시

Hari k 2024. 1. 17.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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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고려의 수도 개성에서 조선을 개국했다. 태조 이성계는 새로운 수도에서 새 왕조를 시작해야 한다는 열망 때문에, 즉위년부터 천도(遷都, 수도를 옮김)를 위해 후보지를 물색했다. 이때 주목받은 유력한 후보지가 충청도 계룡산 아래 신도안 일대다. 

즉위 2년(1393) 봄. 태조 이성계는 신하들을 대동하고 물망에 오른 수도 후보지인 계룡산 일대를 답사하고는 바로 새 수도로 결정한다. 그리고 신수도 건설을 감독할 신하들을 남겨두어, 수도가 될 신도시 기초공사를 즉시 시작하게 한다. 약 한 달 후 계룡산 신수도의 주현(州縣)·부곡(部曲)·향소(鄕所) 총 81개 행정구역도 확정된다. 

그런데, 계룡산 공사시작 10개월이 지난 1393년 음력 12웕 11일, 돌연 계룡산 신수도 공사가 중단된다. 계룡산 일대의 지세가 풍수에 맞지 않다는 하륜(경기 좌우도 관찰사)의 상소를 받아들인 것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 꿈_시종일몽(始終一夢)


신도시 공사는 공사중지 11일전에도 계룡산에  김주(金湊, 당시 신도시 담당자인)를  보내 살피게 할 정도로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태조 이성계는 많은 인력과 재정 그리고 10개월의 시간이 들어간 계룡산 신도시를  왜 단 11일만에 백지화하는 것으로 마음을 바꾼 것일까?  또한 생활기반이 개성(옛 고려수도)인 대부분의 신하들이 새로운 도시로의 천도를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계룡산 신도시 공사를 강행했는데, 왜 유독 하륜의 의견을 받아들여 공사를 중지하였을까?

약 300여년 뒤 조선후기에 저술된 ‘순오지(홍만종 저, 1678)’와 ‘연려실기술(이긍익 저, 1911)’에 기록된 설화에 의하면, 당시 태조 이성계가 계룡산 신수도 건립계획을 접은 이유는 그 당시 꾼 꿈 때문이었다고 한다. 건국 후 어수선한 시기였으므로 꿈 하나에도 마음이 쓰였을 수 있고, 시기적으로 그럴듯해 보인다.

계룡산 일대의 신수도의 기초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태조의 꿈에 신인(神人, 신같이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서 말한다.
 “계룡산은 바로 전읍(奠邑)이 의거할 땅이지 그대의 터가 아니니, 머무르지 말고 빨리 가라.” 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전읍(奠邑)이란 '자리 잡고 살 고을을 정한다'란 뜻도 있지만, 정(鄭)씨를 나타내는 한자의 파자(破字)다.
즉 태조 이성계가 건설중인 계룡산 신도시는 정 씨 성을 가진 사람의 수도가 될 것이니, 이 씨 성을 가진 이성계는 다른 수도 후보지를 알아봐라'라는 뜻이 된다.

(이 설화의 '계룡산에 정씨가 도읍한다'는 이야기는 설화의 특성상 조선후기 양반들 사이에도 널리 퍼졌던 '조선왕조가 망하고 정 씨가 계룡산에 도읍한다'는 ‘정감록’의 내용이 첨가된 것 같다.)

이후 조선의 수도는 계룡산과  또다른 후보지 무악(현재 서대문구 일대)을 제치고, 한양(지금의 서울)으로 결정된다(1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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