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몽(始終一夢)

꿈을 빌미로 폐위된 조선 숙종의 왕비 인현왕후 본문

사(史)적인 꿈 이야기

꿈을 빌미로 폐위된 조선 숙종의 왕비 인현왕후

Hari k 2024. 1. 4.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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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왕후는 조선 19대 임금 숙종의 두 번째 왕비다.


당시 법도상 숙종은 왕비 사망 후 3년상을 마친 후 재혼이 가능했지만, 첫 번째 왕비 인경왕후가 사망한 지 고작 7개월 만에 두 번째 왕비를 맞게 된 것이다.  이는 당시 주도권 쥔 서인정권이 서인쪽 왕비를 만들기 위해, 미리 인현왕후를 내정해 놓고 숙종의 재혼을 서둘렀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략적으로 왕비가 된 인현왕후는 초반부터 숙종임금의 애정을 받지 못했고, 숙종은 궁인 장옥정(후일 장희빈)을 후궁으로 삼고 심하게 총애한다

조선 인현왕후 꿈_시종일몽(始終一夢)

 

인현왕후와 서인정권은 후궁 장옥정를 견제하기 위해 간택후궁 영빈 김 씨(입궁한 해 귀인(종1품)으로 책봉)를 입궐시키기도 하고, 상소를 올려 후궁 장옥정을 폐출할 것을 숙종에게 건의하기도 한다.
그러나 숙종은 오히려 폐출 상소를 올린 신하(이징명)를 파직시키고, 장옥정의 품계를 높여 숙원(종4품)으로 책봉하고 노비까지 하사한다. 이런 숙종의 총애를 믿고 숙원  장옥정은 인현왕후에게 오만방자한 언행을 하는 일도 일어난다.

장옥정으로 인해 마음고생을 하던 인현왕후는 그의 나이 19세(1686)되던 해 겨울,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꾸게 된다.

 

꿈에 돌아가신 시부모님인 현종과 명성왕후가 인현왕후 앞에 나타났다. 시어머니 명성왕후가 며느리인 인현왕후와 귀인 김 씨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왕비(인현왕후)와 귀인(貴人=간택후궁 김 씨)은 선조임금 때처럼 복록(福祿)이 두텁고 자손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숙원(장옥정)은 아들이 없을 뿐만 아니라 복도 없을 것입니다.
장숙원은 전생(前生)에 짐승의 몸이었는데, 주상께서 쏘아 죽이셨으므로, 묵은 원한을 갚고자 하여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경신년(1680, 숙종 6년에 남인이 정치적으로 축출된 사건)에 실각(失脚) 한 후에 불만을 품은 무리(남인들)와 서로 결탁하여 입궁하였으므로,  오랫동안 대궐 안에 있게 되면, 헤아릴 수 없는 화(禍)를 당하게 되어, 장차 국가에 이롭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꿈을 꾼 인현왕후는 기회가 될 때 자신의 꿈 이야기를 숙종에게 전했다

그러나 인현왕후가 꾼 꿈 내용과는 달리, 2년 후(1688) 숙의 장옥정은 숙종의 첫아들(후일 경종)을 낳게 되었고, 다음 해(1689) 백일도 안 된 첫아들을 원자로 삼고, 장옥정을 정1품 '빈(嬪, 후궁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지위)'으로 책봉하니, 그녀가 바로 장희빈이다. 


숙종은 급기야 장희빈을 중전으로 올리기 위해 인현왕후를 폐위하고자 하는데, 인현왕후가 3년 전 꾼 꿈 이야기를 말하며, 시부모의 계시를 빙자하고 투기하였다는 죄를 물어 폐위시키려 한다.

숙종이 인현왕후를 이런 황망한 죄목으로 폐위하려 하자, 당시 집권세력이자 인현왕후와 반대파인 남인마저도 왕비가 부덕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며 일제히 반대했다고 한다.

 

인현왕후는 꿈이야기를 통해 장희빈을 견제(혹은 비난)하는 발언을 한 것이지만, 이것이 자신이 폐위될 때 명분이 된 것이다. 인현왕후는 왕비의 자리에 오른 지 8년만에 폐위었는데, 그녀의 나이 22살(1689)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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