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몽(始終一夢)

꿈속에서 시험문제를 미리 알게 된 조선 문신 임백령 본문

예지몽이야기

꿈속에서 시험문제를 미리 알게 된 조선 문신 임백령

Hari k 2024. 2. 1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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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백령은 조선 중종(11대 임금)부터 명종(13대 임금) 때까지의 문신이다. 
초기에는 개혁 성향의 정치인이었으나, 명종(明宗) 임금이 즉위 1545년) 후, 명종의 외숙인 소윤 윤원형(尹元衡)을 도와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인종의 외숙 대윤 윤임(尹任) 일파를 숙청하는 을사사화(乙士死禍)를 주도했다. 임백령은 이 공적으로 1등 공신으로 책록 되고 숭선부원군에 오르는 등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된다.

이런 임백령도 젊은 시절 벼슬을 하기 위해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조선의 과거시험(문과)은 크게 초시, 복시, 전시 3단계 과정을 거쳤는데, 초시와 복시 사이에 유교경전인 칠서강(七書講)을 암송하는 구술시험을 보았다.
칠서강(七書講)이란 '주역, 서전, 시전의 삼경과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의 7개 유교경전을 말한다.

이 구술시험은 7명의 시험관이 7개의 유교 경전에서 각각 한 구절씩을 불러주면, 응시자가 그 뒤의 문장을 이어 외우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시험관들이 응시생의 답을 듣고 ‘통(通)’ ‘약(略)’ ‘조(粗)’ ‘불(不)’ 4단계로 평가하며, ‘조’ 이상을 받지 못하면 '복시'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과거시험에 낙방했다

 

조선 문신 임백령 예지몽_시종일몽(始終一夢)


임백령이 21세(1519) 때, 식년(式年 3년에 한 번씩 보는 과거) 초시에 합격 후, 그다음 시험인 구술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경전을 공부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 양이 너무 방대하여 어디서부터 보아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임백령은 문예창작능력을 평가하는 진사시 합격생 출신이어서, 4서(四書)와 역사 쪽으로는 깊은 지식이 있었으나 경학(經學) 쪽 공부가 다소 미흡하였기 때문이다. 

그날도 구술시험 준비를 하다가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머리가 하얀 노인 한 명이 나타났다.
노인은 “너는 한 세상의 위인이 될 것이니,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라.”라고 말했다.

임백령이 답답해하며  “제가 경학을 잘 모르는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더러 어찌하라는 말입니까?”라고 되물었다. 
 “네 이름을 괴마(槐馬)로 고치고, 또 구술시험을 볼 때 경서 중에서 어느 장(章)이 출제될 것이니, 그 장을 많이 읽어 익히고, 다른 데 정신을 낭비하지 말아라.”라고 하며
시험에 나올 경서의 장을 일일이 알려주었다.

임백령이 잠을 깬 뒤에도, 꿈이 어찌나 선명하던지, 꿈속 노인이 시험에 나올 장이라고 알려준 곳을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임백령은 곧바로 불을 켜고, 많은 경서 중에서 그 장만을 뽑아 별도로 책자를 만들어 옮겨 적어, 자신만의 수험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만 집중적으로 공부하였는데, 하나하나 완전히 이해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또 꿈속 노인이 알려준 대로 '괴마(槐馬)'로 개명하려 하였으나, 이름으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으므로 별호(별명)로 사용하였다.

드디어 구술시험을 보기 위해 시험장에 들어갔는데, 신기하게도 꿈속 노인이 알려준 경서의 장을 시험관들이 문제로 불러주는 것이었다.  임백령은 자신이 익힌 것을 술술 대답했고, 시험관 전원이 경학에 대한 그의 지식과 정교한 해석에 감탄했다 

그때, 유독 한 시험관이 미소를 지으며, “이 유생이 틀림없이 괴마일 것이다.”라고 동료 시험관들에게 조용히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임백령이 깜짝 놀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시험관을 쳐다보니, 그 시험관이 어젯밤에 꾼 이상한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시험관이 구술시험 전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어떤 머리가 하얀 노인이 나타나서 
"이번 구술시험에는 '괴마'라는 사람이 한 세상의 위인이 될 것이요, 또 경학에 대한 정통함도 비교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라는 말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자신이 꾼 꿈이야기를 마친 후, "이번 구술시험을 보는 사람들 중에 이만한 유생이 없으니, 자네가 괴마가 아닌가?” 하고, 
또 묻기를  “자네가 틀림없는 괴마이지?”라고 하였다. 

임백령이 자기의 호가 '괴마'라고 대답하니 옆에 있던 나머지 시험관들이 모두 축하해 주었다고 한다. 


괴마 임백령의 본관은 선산, 시호는 문충공으로 조선중종 14년(1519)에 진사시,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대사헌, 호조·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까지 오른 인물이다. 을사사화(乙士死禍)로 악명(惡名)을 남기긴 했지만,  시와 문장이 훌륭했다고 한다.

그 후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오다 48세(1546)의 나이에 병으로 죽었다. 또한 사망한 지 24년(1570, 선조 3년) 뒤에, 을사사화로 많은 재신과 선비를 해친 일로 받았던 관작이 추탈( =죽은 사람의 죄를 따져, 살았을 때의 벼슬 이름을 깎아 없앰 )되기도 한다.

 


<Postscript>
임백령은 아버지 임우형(林遇亨)과 어머니 음성 박 씨 사이에서 5형제 중에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형제들의 이름을 서열순으로 보면, 천령(千齡), 만령(萬齡), 억령(億齡), 백령(百齡), 구령(九齡)으로 이채롭다.
이름의 '령(齡)'은 나이를 뜻하고, 가운데 글자가 '천, 만, 억' 등으로 수가 점차 증가하는 데, 임백령부터 서열과 숫자가 일치하지 않는다.

 

굳이 서열과 숫자를 맞춘다면 임백령(林百齡)과 동생 임구령(林九齡)은 임조령((林兆齡), 임경령((林京齡) 이 될 수도 있었다.  아마 임억년(林億齡)까지는 숫자의 나이만큼 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것 같은데... 실제로 5형제 중 임억년(72세 사망)이 제일 장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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