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몽(始終一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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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몽이야기

꿈 때문에 간택 후궁을 뽑은 인조(조선)

Hari k 2023. 12. 27.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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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6대 임금 인조는 그의 나이 40세(1635)에 갑자기 간택 후궁으로 "숙의(淑儀, 종 2품)"를 뽑으라고 명령한다.
당황한 예조의 신하들이 그다음 날 다시 물어본다 “숙의 단자(淑儀單子)는 몇 살부터 몇 살까지 받아들입니까?”
인조는 답한다. “열다섯 살에서 스무 살까지를 한정으로 하라.”

이틀 후, 인조의 할아버지인 선조와 그  왕비 의인왕후의 묘(목릉과 혜릉)가 무너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신하들은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으니, 인조가 후궁 간택을 중지시킬 것이라 짐작했다.

그리나 한 달 조금 지난 후 인조는 재차 간택 날자를 재촉한다.
“숙의(淑儀) 될 처녀를 간택하는 날짜를 다음 달 보름 뒤로 택해서 정하라.”

결국 삼간택을 걸쳐 인조는 장유(張留)의 딸을 선택한다. 그녀가 숙의(淑儀) 장 씨로 당시 그녀의 나이 16세로 인조보다 24살 어렸다.
(그녀는 후일 종1품 귀인의 첩지를 받고 장귀인(張貴人, 1619~1671)이 된다)

인조의 이런 행동은 신하들의 호된 비판을 받게 된다.
"...지금 전하께서는 재앙이 내린 때에 숙의(淑儀)를 선발하셨으니...(중략)... 아무리 후사가 없어 서두르는 임금이라도 필시 가례(嘉禮)와 경척(警惕)을 동시에 시행하기를 꺼릴 것인데..."《인조실록》 13년 8월 23일

인조는 왕비 인열왕후와 금슬이 좋아서 6남 1녀를 낳았는데(3남 1녀가 어릴 때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건강한 아들이 이미 3명(소현세자, 봉림대군, 인평대군)이 있었으며,  3명 모두 혼례를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 후궁간택당시 인열왕후는 인조의 7번째 아들을 잉태 중이었으며, 궁 안에는 4년 전부터 지척에 두고 총애하는 궁녀 조 씨(후일 조귀인)도 있었다. 인조는 왜 그리 후궁 간택을 강행한 것일까?

조선 인조 예지몽_시종일몽(始終一夢)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인조는 꿈 때문에 숙의 장 씨를 후궁으로 간택했다고 한다.

후궁 간택령을 내리기 전, 어느 날 인조는 기이한 꿈을 꾸게 된다.

꿈속에서 한 여인을 보게 되는데, 15세에서 20세 정도의 앳되어 보이는 여인이었다. 
그 여인은 인조의 앞으로 나와서 "저는 본관은 덕수이고, 장류의 딸입니다"라고 말하고는,
종이에 ‘태평(太平)’이란 글자를 써서 인조에게 공손하게 바쳤다. 종이를 손에 받아 들고 인조는 꿈에서 깨었다.

꿈이 너무 이상하였으나, 앳된 여인이 장유의 딸이라는 것만 생각날 뿐,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인조는 사람을 시켜 주변에 장유라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게 한다. 그러던 중 진사 장유(張留)라는 사람에게 정말로 꿈에서 본 나이대의 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후궁으로 뽑아 들이게 한 다음, 꿈속에서 본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험 삼아 글씨를 써보게 하였다. 그녀는 곧 ‘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 온 세상이 태평한 봄날과 같다)’이라는 다섯 자를 써서 인조에게 올렸다.

후일 그녀는  종1품 귀인에까지 오르기는 하였으나, 인조 사이에 자식을 얻지 못한다. 인조의 또 다른 후궁인 조귀인(趙貴人) 때문에 왕의 사랑도 받지 못한다. 인조의 기대와는 달리, 일부 꿈의 내용과 비슷하였을 뿐, 특별한 일이 없이 그녀의 나이 52세(1671)에 세상을 뜬다. 


그러나 인조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으니, 
후일 자신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는 효종(봉림대군)의 왕비 인선왕후 장 씨가 우의정을 지낸 장유(張維)의 딸이었다는 사실이다.
(인조의 간택후궁 귀인 장 씨와, 인조의 둘째 며느리 인선왕후는 본관이 '덕수'로 같으며 먼 친척관계이다. 귀인장씨의 아버지는 '장유(張留)'이고, 인선왕후의 아버지는 '장유(張維)'로 발음은 같고 한자가 다르다, 나이대도 비슷했는데, 귀인장씨가 인선왕후보다 1살 어릴 뿐이었다)

봉림대군은 둘째 아들로 인조가 기이한 꿈을 꾸었을 당시 왕위계승 가능성이 낮은 상태였다. 세자인 소현세자가 건장했으며, 소현세자의 아들인 원손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자호란 이후 상황이 바꾸게 된다.

병자호란(1636) 이후 인조의 장남인 소현세자 부부와 차남 봉림대군 부부는 8년간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 갔다.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먼저 풀려나 귀국했지만 조선에 도착한 지 두 달 후에 갑작스럽게 죽게 된다. 인조는 소현세자가 죽자 원손이 아닌 차남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는데, 그가 훗날 17대 임금 효종이다.
효종은 병자호란 이후 무너져가던 조선을 다시 되살리려고 노력했던 중흥군주이자 현실적인 개혁군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이후 효종이 청나라에 볼모로 있을 때 인선왕후 장 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현종(조선 18대 임금), 그리고 현종의 외아들 숙종(조선 19대 임금)에 이르기까지 적장자에게 왕위를 승계하면서 정통성을 이어가게 된다.

인조의 꿈속에 ‘태평(太平)’이란 글자를 써서 바친 장유의 딸은 둘째 며느리 인선왕후 장 씨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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