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몽(始終一夢)

조선 대학자 송시열의 태몽 본문

태몽이야기

조선 대학자 송시열의 태몽

Hari k 2018. 3. 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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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이다. 또한 조선이 배출한 최고의 대학자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당쟁을 심화시킨 조선 최대의 당쟁가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송시열(조선) 태몽_시종일몽(始終一夢)

 

송시열은 아버지 송갑조(宋甲祚)와 어머니 선산(善山) 곽씨사이에서 5남 2녀 중 셋째 아들로 외가인 옥천군 구룡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은진.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菴), 화양동주(華陽洞主),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송시열은 2개의 태몽이 전해진다.

 

송시열을 잉태하기전 어머니 곽씨가 꿈을 꾸게 된다. 

밝은 달과 같이 둥글고 큰 구슬이 눈앞에 놓여 있었는데, 

어둠 속에서도 아름답고 찬란한 빛이 낸다는 명월주(明月珠)였다.

어머니는 곽씨는 명월주를 집어 꿀꺽 삼키고는 꿈에서 깨었다.

 

 

또 다른 태몽은 그의 아버지가 꾸었는데,  '숙종실록 21권, 송시열의 졸기'에 그 기록이 남아있다. 

송시열이 태어나기 전날밤에 그의 아버지는 잠시 꿈을 꾸게 된다.

갑자기 한밤중에 자신의 집 대문 활짝 열리더니, 공자가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앞으로 나아가 공자와 제자들을 맞아들이게 된다.

집안으로 들어온 공자는 그가 거느리고 온 제자들 중 한 사람을 가리키고는 

'이 사람을 그대에게 보낼 것이니, 잘 가르치시오'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다음날 송시열이 태어나자 그의 아버지는 기뻐하며 '성인이 보낸 아이'라는 뜻에서  성뢰(聖賚)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아버지 송갑조는 아들 송시열에게 직접 격몽요결과 기묘록 등을 교육하면서 아들의 학업 독려에 각별한 정성을 쏟았다.

 

송시열은 27세에 과거에서 장원급제하고, 29세에 봉림대군(훗날 효종)의 사부가 된 인연으로, 봉림대군이 효종으로 즉위한 후 장령(정4품 관직)의 벼슬을 받고 조정에 나가게 된다. 이후 송시열은 '조선왕조실록'중 그의 이름이 삼천 번 이상 언급될 정도로, 정치가이자 학자로서의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다.

 

송시열은 당시 숙종의 후궁이였던 희빈 장씨의 아들(훗날 경종)이 세자로 책봉되는 것을 반대하다가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83세에 '노론(老論)의 수괴'라는 죄명으로 사약을 마시고 사사당하게 된다.

그리고 송시열이 사망한지 67년 만인 1756년(정조 32년)에 성균관 문묘(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에 배향되어 '공자'와 함께 '송자(宋子)'로 불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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