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몽(始終一夢)

송도삼절 서경덕의 태몽 본문

태몽이야기

송도삼절 서경덕의 태몽

Hari k 2018. 3. 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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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경덕(徐敬德, 1489~1546)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주기파(主氣派, 조선 후기 기호 지방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의 한 유파)의 시조이다.  또한 송도삼절(松都三絶)로도 불릴 만큼 유명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송도삼절이란 '송도에서 아주 뛰어난 3가지'라는 의미로, 여기서 '송도'란 서경덕이 태어나고 자란 '개성'의 또다른 이름이다.

송도삼절로는 서경덕의 학문, 박연폭포의 멋진경치, 여류문인이자 기생인 황진이의 미모를 지칭한다고 한다.

서경덕(조선) 태몽_시종일몽(始終一夢)

 

서경덕은 수의부위(修義副尉, 종8품 무관)를 지낸 아버지 서호번(徐好蕃)과 어머니 보안(保安) 한씨 사이에서 2남 중 맏아들로 개성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당성(唐城)이며, 호는 복재(復齋)와 화담(花潭)이다. '화담'이란 호는 그가 개성의 '화담'이란 연못가에 집을 짓고 학문연구와 교육에 힘썼던 것에 연유하여 불린 것이라고 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하급 무관출신이였으며,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어린 시절에 매일 들에 나가 나물을 뜯어와야 할 정도로 궁핍했다고 한다.

 

서경덕을 잉태하기 전에 어머니 한씨가 꿈을 꾸게 된다.

어머니의 한씨 앞에 어떤 전각이 보여서. 아무 거리낌 없이 그 전각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전각 한가운데에 위패가 모셔져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공자의 위패를 모셔놓은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신이 꿈에서 들어간 전각이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후 서경덕을 잉태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경덕은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아이들과 남달랐는데, 스스로 글을 익혀 썼으며, 책을 읽으면 모두 외울 정도로 기억력이 뛰어났다.

집이 가난하여 정식 교육은 14살에 처음으로 잠시 받게 되는데, 선생도 알지 못해 알려주지 못한 것을 오랜 사색을 통해 스스로 깨우침을 얻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무관인 무인 집안이었지만, '공자의 사당에 들어간 태몽' 때문이었는지, 서경덕은 스승 없이 독학으로 학문을 터득하게 된다.

 

잠시 아버지의 명령으로 과거에 응시해 진사(進士)에 올랐지만, 다시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그에게 여러 번 벼슬을 주려 하였으나 사양하고 은거하며 정치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다. 

58세에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가난하였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학문을 연구하며 제자를 양성하는데 전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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