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몽(始終一夢)

왕건의 목숨을 구한 최응의 태몽 본문

태몽이야기

왕건의 목숨을 구한 최응의 태몽

Hari k 2017. 7. 1.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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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응(898-932)은 황해북도 황주 토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최우달(祐達)은 태봉에서 대상(大相)이라는 관직에 있었다.

최응이 태어난 시기는 신라가 망해갈 무렵으로 당시 궁예는 '태봉'이라는 나라를 지금의 강원도 철원에 세웠는데, 궁예는 성격이 난폭하고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등 횡포가 심하여 나라가 온통 공포분위기였다.

 

최응은 왕건이 궁예의 신하로 있을때 목숨을 구해준 사람으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알려져 있다.

궁예는 자신이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신통력이 있다고 주장하며, 반역죄로 몰아 많은 장수와 대신을 죽였다.
하루는 궁예가 훗날 고려의 태조가 되는 왕건을 불러, 반역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알고 있으니 자백하라고 했다.
왕건이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궁예의 옆에서 기록을 담당하고 있던 최응이 일부러 붓을 땅에 떨어뜨리고, 붓을 줍는척 왕건의 곁을 지나면서 '아니라고 하시면 목숨이 위태롭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순간, 왕건은 궁예가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반역을 도모했다고 거짓으로 말하고 용서를 구했다. 궁예는 이 모습에 크게 웃으며 오히려 상을 내렸다고 한다.

최응 태몽_고려_시종일몽(始終一夢)

이렇게 기지 넘치는 최응에게는 태몽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최응을 낳기 전 그의 어머니가 동네 부인들과 대청 마루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마침 마당을 둘러싼 담벼락에 탐스러운 오이가 열렸는데, 오이덩쿨과 잎사귀가 햇살에 타고 말라 보잘것 없이 보였다.
그의 어머니는 오이덩쿨을 보며 '열매를 맺기 위해 저렇게 타고 말랐구나, 그래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으니 그 노력이 헛되지 않구나'라고 생각하며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꿈속에서 조금전에 보았던 오이덩쿨의 오이가 갑자기 참외로 변하더니, 시들어 말라있던 오이덩쿨과 잎사귀가 서서히 처음의 모습처럼 싱싱하고 푸르게 변하였다.

 

꿈에서 깨어 옆에 있던 부인들에게 오이가 참외가 되는 꿈을 꾸었다고 이야기 하자, 다들 아들을 낳을 태몽일 것이라 이야기 해주었다. 그리고 이꿈을 꾼 후 최응의 어머니가 아기를 잉태하게 되자, 이 이야기가 한사람, 두사람 전달되더니, 태봉의 국왕 궁예의 귀까지 들어갔다.

 

궁예가 무언가 꺼름직하여 무당을 불러 이 꿈에 대한 길흉을 점쳐 보니
'딸을 낳으면 상관없으나, 만약 아들을 낳으면 궁예의 나라에 해로울 것이니 절대로 키우지 말고 바로 죽여야 한다'라는 점괘가 나왔다. 이후 궁예가 혹시 아들이 태어났을까봐 사람을 시켜 최응의 어머니를 염탐하게 했고, 아들을 낳으면 궁예가 죽이려 한다는 말을 전해들은 최응의 부모는 아들를 잃게 될까 두려워, 딸을 낳았다고 가족과 이웃들을 속였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딸을 낳은 것을 축하해 주었고, 궁예가 보낸 염탐자도 딸을 낳았다고 궁예에게 보고했다.
덕분에 궁예의 감시를 피하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도 더 이상 최응의 집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행여 최응이 아들인 것이 알려질까봐, 부모가 그를 숨겨 두고 양육하였는데, 학식이 뛰어나고 글을 잘 지었으므로 장성하자 궁예가 한림랑(翰林郞)으로 임명하고 성인(聖人)이라 지칭하며 총애하였다.

 

왕건은 고려 개국후에도 최응을 귀한 인재로 여겨 아끼고 곁에 두었다고 한다. 최응은 고려 태조 15년에 그의 나이 불과 35세에 병사하였는데 당시 왕건은 부고를 받고 매우 애통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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