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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일몽(始終一夢)
구한말 의병장 이강년의 태몽 본문
이강년(李康秊, 1858~1908)은 구한말 항일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인물이다.
경북 문경군 가북면 도태리에서 아버지 이기태(李起台)와 어머니 의령 남 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낙인(樂寅)이며, 호는 운강(雲崗)이다.
이강년의 태몽은 어머니 남 씨가 꾸었다.
하늘에 떠있는 크고 밝은 태양이 갑자기 어머니 남 씨의 입속으로 쑥 들어왔다. 어머니 남 씨는 입으로 들어온 태양을 얼결에 삼키고 꿈에서 깨었다고 한다.
이후 이강년이 잉태되었고, 이강년이 태어난 후 꿈에서 본 태양을 생각하며 아명을 양출(陽出)이라 지었다. 떠오르는 태양처럼 아들이 빛나는 인물이 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8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큰아버지의 집에서 자랐다. 22세(1880년)에 무과에 급제해 종 6품 선전관으로 관직에 있었으나,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등을 겪으면서 친일파의 행동에 분노해, 벼슬을 버리고 고향 문경에 낙향하여 동학군에 투신하기도 했다.
이강년은 을미사변(1895년,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계기로 38세(1896년)에 자신의 전재산을 털어 경북 문경에서 처음 의병을 일으켰다. 자신의 세 아들을 모두 의병에 참여하게 할 만큼 구국에 진심이었다. 이후 1908년 7월 2일 제천 적성산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붙잡히기까지 약 13여 년간 전국 각지에서 혁혁한 의병투쟁 활동을 이어간다.
그러나 붙잡혀 구금된 해(1908년) 10월 13일 내란((內亂) 죄로 경성감옥(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교수형을 당함)했다. 그의 나이 5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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