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몽(始終一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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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몽이야기

서애 유성룡의 태몽

Hari k 2017. 10. 1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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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선조 때 문신이자 학자인 서애 유성룡(1542-1607)은 임진왜란이라는 어려운 시기에 영의정의 자리를 맡아, 국난극복의 노력을 기울였던 인물이다.

  서애 유성룡(1542-1607)은 외가가 있는 경상북도 의성현 사촌마을에서 아버지 유중영(황해도 관찰사 역임)과 어머니 안동 김씨 사이에서 2남 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서애 유성룡 태몽_시종일몽(始終一夢)

어머니 김씨는 유성룡을 잉태하고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용이 구름을 뚫고 하늘로 힘차게 오르더니  하늘 위의 창공에 오르자 선명한 청룡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꿈에서 깬 어머니 김씨는 복중의 아기가 큰 인물이 되리라는 것을 직감하였다. 

 

설화에 의하면, 유성룡의 외가인 사촌마을은 3명의 정승이 나온다는 전설이 있는데, 사촌마을에서는 신라시대 최치원의 장인인 나천업이 정승이 된 이후 2명의 정승이 더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행여 외손에게 좋은 기운이 발복 되지 않기 위해 출가한 딸들이 친정에 와서 아이를 낳는 것을 원하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선명한 청룡꿈을 태몽으로 꾼 유성룡의 어머니는 좋은 기운이 아이에게 발복 하게 하기 위해 친정에서 아이를 출산하기로 결심하고 시댁인 안동에서 사천마을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출가한 딸에게 명당의 좋은 기운을 내어 줄 수 없다는 친정아버지 때문에 친정집에서 쫓겨나 다시 시댁으로 돌아가던 중, 사촌마을을 벗어나기 전인 '서림'(현 가로숲, '서쪽에 있는 숲'이라는 의미)이라는 숲 속에서 유성룡을 출생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유성룡이 사촌마을에 태어난 두 번째 정승이 되었으며, 아직 세 번째 정승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유성룡은 퇴계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조선건국 이래 최대 환란인 임진왜란을 지혜롭게 극복해낸 재상이 되었다. 또한 임진왜란의 기록인 "정비록'을 남겼다.

 

 

유성룡의 태몽과 관련된 또다른 이야기도 있다.

유성룡의 어머니가 위로 딸만 계속 낳아 걱정하던 중에 친정에 잠시 다니러 갔다. 

마침, 친정에 놀러온 결혼한 언니가 자신이 용 두 마리가 자신의 치마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는데, 태몽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김씨는 자신의 비단 치마를 꿈 값으로 줄 터이니 대신 꿈을 자신에게 팔라고 했다.

언니에게 비단치마를 주고 태몽을 산 이후 아기를 잉태해서 유성룡을 낳았다 고 한다.

 

유성룡의 형제는 원주목사를 지낸 겸암 유운룡(1539-1601)과 유성룡, 그리고 여동생 3명으로 2남 3녀이므로, 아들을 낳기 위해 태몽을 샀다는 이 태몽이야기는 거짓일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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