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몽(始終一夢)

허난설헌과 죽음을 알려준 예지몽 본문

예지몽이야기

허난설헌과 죽음을 알려준 예지몽

Hari k 2017. 7. 11.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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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본명은 허초희(許楚姬)이지만,  우리에게는 허난설헌(許蘭雪軒)이라는 당호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당호란 이름 대신 그 사람이 기거하는 집의 이름으로 그 사람을 대신하여 부르는 호칭으로, 그녀는 난초(蘭)와 눈(雪)의 이미지를 따서 그녀가 기거하던 집의 당호를 '난설헌'이라 하였다.

 

허난설헌은 강원도 강릉 초당에서 아버지 허엽과 어머니 강릉 김씨 사이에서 2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은 그녀의 동생이다. (본래 그의 아버지 허엽은 첫째 부인 청주 한씨와의 사이에 허성과 두 딸을 낳고 사별한 뒤, 허난설헌의 어머니와 재혼해 3남매를 얻었으니, 배다른 형제까지 모두 합하면 3남 3녀가 된다)


그녀의 아버지 허엽은 아들들과 마찬가지로 딸에게도 똑같은 교육을 시킬정도로 진보적인 사람이었다. 그녀의 오빠 허봉도 여동생의 재능을 아껴서 친구 이달에게 동생 허균의 공부를 부탁할 때, 허난설헌도 함께 배우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허난설헌은 이러한 분위기로 인해 어릴 때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는데, 그녀는 생전에 약 300여 수의 시와 산문, 수필 등을 썼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재 213수 정도가 전하고 있다.

어난설헌(조선) 예지몽_시종일몽(始終一夢)

허난설헌은 15세 되던해 안동 김 씨 김성립과 결혼했으나, 남편은 주색잡기에 빠져 기생집으로 전전하고, 고부간의 갈등이 심했다. 게다가 혼인한 지 3년 만인 18세 때 아버지 허엽이 죽고, 이어서 아들과 딸이 잇달아 병사하고 뱃속의 아이마저 사산되자, 자신이 겪은 불행한 일상을 견디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글과 그림으로 보내게 된다.

 

그녀는 23세때 상을 당해 외삼촌 집에 묵고 있었는데, 그때 이상한 꿈을 꾸게 된다.


바다 가운데 있는 구슬과 옥으로 만들어진 산에 오르게 되었다. 겹겹이 둘러 싸인 많은 산봉우리도 흰구슬과 푸른구슬로 되어 있어 눈이 부시게 반짝거렸다. 오색 영롱한 무지개가 구름까지 펼쳐져 있고 벼랑의 바위 사이로 흘러내리는 폭포수는 옥구슬 구르는 소리가 나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때 20대로 보이는 아름다운 두 여인이 손에 금빛 호리병을 들고 나막신을 신고 나타났는데, 한 사람은 붉은 노을 빛 옷을, 나머지 한 사람은 푸른 무지갯빛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여인들은 사뿐사뿐 자신에게 걸어와 예를 갖춰 인사를 하였다.
그들과 함께 시냇물을 따라 봉우리 위의 큰 연못이 있는 곳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주변에는 기이한 풀과 이상한 꽃이 피어있고, 새들은 날면서 춤추었고 나무 끝에서는 온갖 향기가 풍겨왔다.


봉우리 위의 연못의 맑은 물속에는 푸른빛이 도는 연꽃이 피어 있었는데, 커다란 연 잎사귀는 서리를 맞아 반쯤은 시들어 있었다. 또한 연꽃 스물일곱 송이도 서리를 맞아 달빛 아래 붉게 떨어져 있었다.


같이 올라간 두 여인이 이곳이 신선세계에 있는 광상산이라고 하면서, 이곳의 모습을 시로 지어 보라고 청하여 꿈속에서 시를 짓게 되었다. 시를 지어 읊자 두 여인이 손뼉을 치면서 감탄했고, 갑자기 하늘에서 붉은 구름이 떨어져 봉우리에 걸리더니 어디선가 북치는 소리가 나서 꿈에서 깨었다.

 

그녀가 지은 몽중시는 다음과 같다.

 

벽해침요해(碧海浸瑤海)
청란의채봉(靑鸞倚彩鳳)
부용삼구타(芙蓉三九朶)
홍타월상한(紅墮月霜寒)

푸른 바닷물이 옥 같은 바다에 스며들고
파란 난새(봉황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전설의 새)가 아름다운 봉황새와 어울리는구나
연꽃 스물일곱 송이가 늘어져
붉게 떨어져 달빛 서리 위에 차갑구나(차가운 달빛 서리에 붉게 떨어졌네)

 

그녀는 꿈을 깨고도 꿈이 너무 선명하여 꿈속에 지은 시를 옮겨 적었는데, 꿈속에서 지은 시를 보며 자신이 요절할 것을 예견했다. 그 꿈을 꾸고 4년 후 그녀가 27세되던 해, 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작품을 모두 불태우고, 집안사람들에게 이 꿈 이야기를 하고는 눈을 감았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은 그녀가 죽은 후 20년 후에,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허균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누나의 작품을 명나라 문인들에게 알리면서,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처음 출간되었고, 이후 100년 후 일본에서 발표되면서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스물일곱 꽃처럼 아름다운 나이에 그녀의 꿈처럼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녀의 작품과 삶은 서리 맞은 붉은 꽃처럼 선명하게 지금도 우리에게 각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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