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몽(始終一夢)

고려의 충신 정몽주와 태몽 본문

태몽이야기

고려의 충신 정몽주와 태몽

Hari k 2017. 6. 16.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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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에 의해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한 정몽주(1337~1392)는 고려시대 대표적 충신으로 알려져 있다.

정몽주 태몽_시종일몽(始終一夢)

정몽주는 꿈 때문에 이름을 세 번 바꾸게 된다.
9세 전에는 몽란(夢蘭), 9세 이후에는 몽룡(夢龍), 성년이 되어 관례를 치른 이후에 비로소 몽주(夢周)로 개명하였다.

 

그의 어릴 적 이름 몽란(夢蘭)은 어머니 이 씨가 꾼 태몽과 관련이 있다.

어머니 이 씨가 정몽주를 잉태했을 때 꿈을 꾸었는데,
안마당에 신선같이 생긴 노인이 꽃을 피운 난초화분을 하나 들고 나타나서 귀한 것이니 잘 보관하라고 하고는 어머니에게 화분을 주고 급히 가버렸다.  난초화분을 품에 안은 어머니는 화분을 주는 이유를 물으려 노인을 급히 부르려다가 그만 화분을 땅에 떨어뜨리면서 놀라 꿈을 깨게 된다.
꿈에서 깨어나 꿈속의 일을 찬찬히 되짚어보니 다행히 화분이 깨지거나 흙이 흘러나오지 않았음을 기억하고는 안도하게 된다.
꿈을 꾼 이후 정몽주가 태어났는데, 특이하게 아기의 어깨 위에 북두칠성 모양으로 일곱 개의 검은 점이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 이 씨는 '꿈속에서 난초를 보았다'는 뜻으로 정몽주의 아명을 '몽란(夢蘭)'이라 부르게 되었다.

 

후일 그가 아홉 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게 된다.
꿈에 검은 용 한 마리가 동산에 있는 배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꿈을 꾸다 놀라 잠에서 깨었다.

 

급히 일어나 마당으로 나가보니 배나무 위에 어린 정몽주가 올라가 놀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큰 인물이 될 것임을 직감하고 크게 기뻐하며, '꿈속에서 용을 보았다'는 의미로 그의 이름을 '몽룡(夢龍)'이라 개명하여 불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몽주(夢周)라는 이름은 그가 성년이 되어 관례를 할 때, 아버지가 꾼 태몽에 근거하여 개명하게 된다.

어머니 이 씨가 정몽주를 잉태했을 무렵, 아버지도 꿈을 꾸게 된다.
아버지 앞에 한 남성이 나타나서 "나는 중국의 주공이다. 그대의 아들은 후세까지 이름을 남길 귀한 인물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주공(周公, 주나라 문왕의 아들)은 중국의 대정치가이자 성인으로 추앙받는 사람이다.  주나라 초기에 국가기반을 다졌으며 공자도 격찬했던 인물이다.

주공 같은 성인이 꿈속에서 아이의 탄생을 예고했다는 것과 아들이 주공처럼 큰 인물로 살아가길 원하는 마음에서 성년이 되어 관례를 치를 때 '꿈에서 주공을 보았다'라는 뜻으로 '몽주(夢周)'라고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이후 정몽주는 20대에 과거에 3번 연속 장원급제하고, 정계에 나아가 고려를 위해 헌신을 다하게 된다.
그는 조선 태종이 된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 의해 선죽교에서 56세의 나이에 죽임을 당하였다.

 

정몽주의 죽음을 두고 후세의 일부 해몽가들은 태몽에서 정몽주의 어머니가 노인이 건네준 화분을 떨어뜨려서, 그가 비명횡사를 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정몽주가 고려 말 학자로서 우러름을 받았으며 후대에 이름을 남긴 귀한 인물임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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